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1.05 17:29 수정 : 2005.01.05 17:29

담론·욕망·해체·노마디즘…. 신문 잡지 등에 자주 언급되고 있어 그 의미를 느낌이나 이미지로는 알고 있지만, 정작 정확한 개념 규정은 하기 어려운 용어들이 적지 않다. 그 용어의 의미를 명확히 알면 우리 시대를 좀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획연재물 ‘코드로 읽는 우리 시대’는 우리 시대의 정치·사회·문화를 이해하는 데 열쇳말이 되는 개념을 통해 우리 시대의 갖가지 현상들을 가능한 한 쉽게 이해하려는 시도다. 의미를 압축적으로 품고 있는 코드를 풀어내면 우리 시대가 보이고, 동시에 우리 시대의 풍경을 통해 그 코드의 의미를 좀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마당인 셈이다.

체험-이론 잇는 언어구성물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 사회는 현대 사회를 특징짓는 여러 징후들을 본격적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시대의 변화는 개념들의 변화와 맞물려 전개되는 법이기에,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다채로운 개념들과 함께 도래했다. 처음에는 학술적 차원에서 등장했던 개념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는 경우가 많다. 199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여러 개념들 중에서 아마도 ‘담론’(discours)이라는 개념만큼 널리 퍼져 일상 언어로 굳어진 개념도 드물 것 같다. ‘담론’이라는 말은 오늘날 도처에서 발견되는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어휘가 되었다.

한 개념이 멀리 퍼져나가면 그 본래의 의미와 맥락이 탈색되어 다소 막연하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사용되곤 한다. 이런 점에서 ‘담론’을 비롯한 우리 시대의 주요 개념들을 검토해 보고 그 의미와 맥락을 점검해 보는 것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시간을 준비하는 사유의 시간을 가져보는 일이 될 것이다.

책·영상·패션 모든게 담론

어린 시절의 생활과 지금의 생활을 비교해 보면, 말과 사물 사이의 비중에서 큰 변화가 도래했음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이것은 ‘시골에서 도시로’라는 공간적 이행과도 맞물려 있는 것이리라. 문명과 문화의 발달은 말의 비중이 사물들의 비중을 잠식해 들어가는 과정이다. 산천초목, 가축들, 그리고 집, 외양간, 우물, 리어카… 등을 비롯한 최소한의 인공물들과 더불어 살아가던 시절은 사물들의 시대였다. 말이라곤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일상어가 전부였다. 그러나 종이와 글의 비중이 점차 커져 간다. 문서들이 가득 쌓인다. 모든 것은 언어를 경과해서야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한다. 1980년대, 그리고 특히 1990년대는 이런 언어적 구성물들이 내용에서나(예컨대 ‘영화학’을 비롯해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각종 담론들이 생겨났다), 매체에서나(예컨대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들이 등장했다) 갑작스럽게 폭발적으로 불어난 시대였다. 언어로 구성된 것들, 곧 몸으로 겪는 실제 체험과 대비되는 언어적 구성물들을 ‘담론’이라 부른다. 1980년대 후반 이래 우리 사회는 담론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그러나 왜 ‘담론’일까. 담론 개념의 출현을 이제 다른 방향에서, 다시 말해 위로부터 다시 바라보자. 이전에, 특히 1980년대에 우리는 학문·과학·이론·사상·명제… 등을 이야기했다. 인식론의 맥락에서는 학문과 사회, 이론과 경험, 사상과 현실, 명제와 감각자료(센스 데이터)… 들의 관계를 논했다. 그러나 고도의 사유를 요하는 이론과 몸으로 직접 겪는 체험 사이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중대한 매개물을 빠뜨리는 일이다. 체험과 이론 사이에 존재하는 ‘담론의 공간’을 건너뛰고 마는 것이다. 왜 ‘담론의 공간’을 빠뜨려선 안 되는가? 고도의 이론과 직접적 체험 사이에 각종 체험을 담론화하는 숱한 방식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의 ‘이론’은 우리의 체험, 특히 정치적 체험을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고도의 이론적 체계들로 담론화했다. 1990년대는 체험을 담론으로 구성하는 형식들이 비약적으로 증폭한 시대, 또는 이전에 주목받지 않았던 담론 형식들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텍스트’라는 말의 외연이 갑자기 크게 확대되었던 현상과도 연계되어 있다. 이제 의미를 읽어내어야 할 것은 반드시 고도의 이론적 언어들만은 아니다. 다양한 종류의 언어들, 나아가 영상들, 심지어 패션들까지도 ‘텍스트’가 되었다. 1990년대는 담론적 관점이 사물적-신체적 관점을 뒤덮으면서 모든 것을 ‘문화’의 영역으로 휩쓸어 담기 시작한 시대였다.

다원성 옷 입고 문화 대중화

담론의 시대는 인식론적 상대성이 발견된 시대이기도 하다. 각각의 담론에는 그 코드가 존재한다. 학생들은 1교시에는 사과의 화학적 조성을 배우고, 2교시에는 사과 특산지의 경제 상황과 연계되는 사과를 배우고, 3교시에는 사과에 대한 각자의 경험을 글로 쓰거나 사과의 모습을 화폭에 옮긴다. 분명 똑같은 그 사과이다. 우리 눈의 구조는 거의 보편적이기에, 사과를 지각한 결과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거의 같다. 그러나 그 지각에서 읽어내는 의미, 그 지각을 어떤 형태로든(화학식의 형태로든, 문학적 언어의 형태로든, 그림으로든) 담론화하는 방식은 각 담론마다 모두 다르다. 또 각 담론이 전제하는 주체의 성격 또한 전혀 다르다. 생물학 시간에는 사물들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그 데이터를 수식이나 화학식으로 표현하는 주체가 전제되고, 반대로 문학 시간에는 사물들에 대한 자신의 내밀한 경험을 은유를 비롯한 문학적 언어로 표현하는 주체가 전제된다. 담론의 공간이 달라지면 주체의 성격 또한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담론의 종류가 비약적으로 증폭하기 시작했던 바로 그 시기가 인식론에서 상대주의가 첨예한 문제로서 대두된 시기였다는 사실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보편성, 객관성은 이제 단지 ‘주어진’ 어떤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야 할’, ‘해결해나가야 할’ 무엇이 된 것이다.

90년대 이후 백화제방 양상

이러한 인식론적 상대주의가 정치적 다원화와 맞물려 전개되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하나의 담론은 하나의 사회적 집단을 함축한다. 물리학·생물학… 등의 담론들은 ‘과학자들’이라는 집단을, 시·소설·희곡… 같은 담론들은 ‘문학자들’이라는 집단을, 정치연설문·팸플릿·국회보고서… 같은 담론들은 ‘정치가들’이라는 집단을 함축한다. 담론의 다양성은 사회집단들의 다양성을 함축하며, 또 새로운 담론들의 출현은 새로운 사회집단의 출현을 함축하는 것이다. 담론을 통해서 하나의 집단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하나의 집단이 특정한 담론을 만듦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표현하기도 한다(앞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으려면 그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담론들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신체적 차원에서의 사회집단들은 담론적 차원에서의 각종 담론들과 맞물려 사회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987년 이후 담론의 시대가 또한 다원화의 시대인 것 또한 조금도 우연이 아니다.

이론의 독과점 시대 허물어

담론의 시대는 극소수의 인간들만이 글을 읽고 저술을 하는 시대, 고도의 이론과 신체적 체험 사이가 뻥 뚫려 있는 시대가 아니라 모든 집단들이 나름대로의 담론을 구성해 가면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문화 대중화의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의 도래는 인류사의 커다란 성취들 중 하나이다.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