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09 21:47
수정 : 2005.01.09 21:47
▷ 용산 새 박물관으로 옮겨지는 보신각종. 지난해 안전점검 때 균열이 몸체의 3분의 2이상 확산된 것으로 드러나자 그냥 끌어올리지 못하고 종아랫쪽 입구에 줄을 여러겹 돌려매어 들어올려야 했다. 원로학자 이호관씨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애꿎게 수난당한 비운의 종”이라고 말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귀한 태생이 만신창이…기막힌 ‘종생유전’
‘휘황한 오색 단청은 하늘 궁전 같은데/ 큰 스님 아침 저녁으로 새 종을 치누나 / 속세와 하늘세상 모인 자리엔 소리가 서로 느껴 어울리고/ 사자와 코끼리 울 때엔 기가 절로 통한다오…이것으로 길이 천 년 국운을 진압하리니 / 헛되이 사람상을 만든 조룡이 우습네그려’
조선초기 대학자 김종직(1431~1492)은 문집 <점필재집>에서 왕실사찰 원각사(현 탑골공원)의 종소리 듣던 감회를 이런 한시로 읊조렸다. 600여 년전 한양성안 화려한 절 경내에서 장엄하게 울려퍼졌던 대종의 은은한 울림이 생생히 전해지는 듯하다. 시 말미에 언급된 사람상을 만든 조룡은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을 일컫는 말이다. 그는 천하를 통일한 뒤 땅 위의 무기들을 녹여 만든 멋진 사람상 12구를 궁중에 세우고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과시했지만 자비와 화합을 상징하는 대종의 기운에는 따를 수 없음을 은연중 빗댄 것이다. 개국 100돌을 앞둔 조선 초 새 나라의 약동하는 기운, 사방에 뻗치는 화합과 하나됨의 정기를 종이란 매개체를 통해 느끼게 하는 싯구다.
이 한시의 주인공이 지금 곳곳에 금이 간 채 만신창이가 되어 주저앉은 보신각 종이란 사실을 되새기는 것은 슬프고도 한스럽다. 80년대까지 서울 한복판 보신각에 걸려 제야의 종소리를 울리다 퇴역한 보신각 종은 높이 372㎝, 무게 약 24톤으로 국내 금속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크다. 2마리 용으로 꾸며진 장식고리가 달린 이 대종의 일생은 파란곡절 그 자체였다. <동국문헌비고>나 심수경의 <유한잡록>에는 이 종이 태조가 후비 신덕왕후의 능 옆에 추모를 위해 지은 절인 정릉사에 걸렸다가 세조가 지은 원각사로 옮겼다고 되어있다. 절이 없어진 뒤 방치되었다가 임진왜란 뒤 남대문, 명동고개를 거쳐 오늘날 종로인 운종가의 종각에 내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에 새겨진 명문에 세조 13년인 1468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고, 세조가 불덕을 쌓기위해 세조 10년 원각사를 창건한 것을 감안하면, 애초 이 절의 범종으로 주조했으리란 가설도 설득력이 있다. 분명한 것은 종의 조성목적이 속세의 악연, 악덕을 씻고 불법의 향기를 널리 전파하려했다는 점이다. 왕비를 못 잊는 태조의 정념을 다스리려 했거나, 유혈 쿠데타의 오명을 안고 왕위에 오른 세조의 과오를 씻기 위한 것이든 간에 말이다.
조선초 큰뜻 은은하나 울림
연산군때부터 쇠락의 길
떠돌이신세…화재…상처…
지난달 새 국립박물관으로
하지만 원각사가 사라진 뒤 방치되었던 종은 임진왜란 뒤 한맺힌 조락을 거듭한다. 종각에서 새벽과 저녁의 시간을 알리다 파괴된 옛 종을 대신해 시각을 알리는 인경종 신세가 되는 데, 고종 때 보신각으로 개칭될 때까지 종루가 무려 4번의 화재를 만나 번번이 화상을 입는다. 표면에 새겨졌던 보살상이 지워지는 아픔도 겪었고 일제말엔 쇠붙이 공출로 사라질 뻔한 위기도 맞는다. 해방 뒤 군중들이 몰려가 종을 치며 감격했던 것도 잠시, 곧이은 한국전쟁으로 종각이 포탄에 맞아 땅에 주저앉아야 했다. 53년부터 85년까지 계속된 제야의 타종은 종의 생명인 소리마저 앗아갔다. 잦은 화재와 파괴로 부실해진 종의 몸체는 엄동설한에 30년 이상 타종하는 악순환을 겪으면서 큰 금이 가 버린다. 쌍룡으로 장식고리를 만들고 종 상중하부에 3개의 띠를 두르는 등 전통 종과 원나라 양식이 섞인 이 종은 조선초 범종사의 수작이었으나 대다수 후대인들에게는 제야의 장식물일 따름이었다.
경복궁 뒷뜰에 벙어리종으로 방치됐던 보신각종은 지난달 20일 새 용산국립중앙박물관 이전 계획에 따라 새 건물 동쪽의 석조물 동산 정자각으로 옮겨졌다. 이곳에서 주저앉은 채 여생을 보낼 보신각종은 어떤 회한을 곱씹고 있을까. 시인 조정권씨는 <균열>이란 산문시에서 보신각종의 운명을 이렇게 곱씹는다. ‘…저 놈의 종이 제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콘크리트 기둥 때문이요 그 주변 빌딩벽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낸 소리를 콘크리트 기둥에 의해 제 스스로 받으며 그 충격으로 제몸을 깨뜨리기 시작한 것입니다…마치 스스로의 소리로 스스로를 처형할 수밖에 없는 사정에 처한 모습인 것입니다…’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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