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틀자체 외면…계층적 접근뿐
80년대 시대 저항상황서 들불처럼
90년 포스트주의에 밀려 불씨만 계급 개념이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된 것은 1920년대다. 그러나 당시 계급이라는 말은 사회분석의 방법론이 아니라 ‘정치적 용어’의 성격이 강했다. 이런 경향은 해방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불평등에 대한 학계의 연구도 이렇다할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1960년대는 한국 사회학의 계층연구에 중대한 변화가 시작된 시기다. 사회조사 자료를 이용한 연구방법이 도입된 덕분에 ‘경험과학’의 측면에서 계층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불평등 문제가 사회학의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고 이순구(전 고려대 교수)·김채윤(서울대 명예교수) 등에 의해 막스 베버 등 외국의 계층이론이 소개된 것도 이때다. 이런 경향은 1970년대 들어 더욱 확장됐다. 1980년대는 계급담론이 본격화된 시기다.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운동과 맞물려 ‘사회구성체 논쟁’ 등이 전개됐다. 여기서 계급론은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한상진·홍두승(이상 서울대 교수) 등이 서구의 계급론을 체계적으로 소개했다. 제도사회학을 비판하는 소장학자들과 대학원생들이 계급담론을 한국의 불평등 문제에 접목시켰다. 고 김진균(전 서울대 교수) 등을 주축으로 1984년 만들어진 ‘산업사회연구회’가 대표적 연구모임이었다. 당시 계급론을 중심으로 불평등 문제를 연구한 대표적 소장학자로는 서관모(충북대 교수)·유팔무(한림대 교수)·조은(동국대 교수)·조돈문(가톨릭대)·신광영 등이 있다. 이 시기에 이르러 불평등 이론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과 베버주의적 관점으로 분리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지만, 두가지 모두 통계적 분석을 강조하는 ‘방법론적 진전’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계급·계층에 대한 관심은 1990년대에 이르러 급속히 약해졌다. 여러 종류의 포스트주의의 도입과 함께 ‘큰 담론’으로서의 계급·계층론의 매력이 사라진 것이다. 성 불평등 이론이 각광받은 것은 하나의 성과로 평가되지만, 전반적으로는 미시적·문화적 현상에 대한 관심이 계급·계층에 대한 관심을 압도했다. 신 교수는 이런 상황이 “구조적 불평등을 연구하는 연구자 집단의 재생산 위기로 연결됐다”고 지적한다. 이는 ‘경험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의 효용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기도 하다. 1997년 구제금융 위기 이후 불평등 구조가 더욱 심화·확대됐지만, 이에 대한 국내 사회학계의 분석과 처방은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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