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지려는 눈빛이 외로웠다 조디 포스터의 영화 중 나의 베스트는 〈양들의 침묵〉이다. 시골 하층민 출신이지만 공부를 죽어라고 해서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되어 자신의 출신으로부터 탈출한다. 한니발 렉터에게 비싼 핸드백에 싸구려 구두를 신은 촌년이라는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그는 연쇄 살인범 피해자들 주변을 끈질기게 탐문하고 다닌다. 그들은 바로 자신이 이제 막 가까스로 탈출해 나온 아무 꿈없는 쓸쓸한 인생들이다. 그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 여자의 연약한 몸, 불안한 듯 낮게 담담히 흐르는 목소리, 강하지 않지만 강해지고 싶어하는 눈빛이 외롭다. 〈콘택트〉에서의 지적인 우주천문학자 역도 좋지만 내게는 〈패닉 룸〉에서의 한 장면이 더 기억에 남아 있다. 여인은 막 이혼을 하고는 병약한 십대 딸과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온다. 두 모녀는 서로 강한 연대감을 느끼고 있고 아주 의연하다. 번잡한 이사를 끝내고 딸도 잠든 늦은 밤 여인은 홀로 와인 한잔을 들고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다. 평화롭게. 갑자기 여인은 여태껏 보여줬던 의연함을 잃고 울컥 울음을 터뜨린다. 한번은 미국 방송의 퀴즈 프로그램 〈지오파디〉에 나온 조디 포스터를 본 적이 있다. 원래 일반인을 위한 프로그램이지만 그날은 배우들을 불러다 놓고 하는 특별기획이었던 것 같다. 결국엔 내 예상대로 조디 포스터가 최후의 승자가 되었는데, 난 그의 해박한 지식에 조금은 감탄했다. 이런 얘기를 늘어놓고 있다고 해서 내가 조디 포스터를 마음속으로 연모하고 있다든가 하는 건 아닌 거 같다. 또 영화감독으로서 언젠가 이 배우랑 일할 기회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꿈을 꾸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나도 조디 포스터에 관한 얘기와 스크린 속 그의 모습을 혼동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가십이나 영화 속 장면들이 그의 진실이건 아니건 간에 내게는 좋게, 쿨하게 느껴진다는 거다. 누구든 남 눈치 안보고 자기 식대로 산다는 건 고독하면서도 아름다운 일이니까.
난 사춘기 때도 여배우를 동경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보다는 옆집 아줌마에게 흥미를 갖는 부류였다. 손에 닿을 수 있는 이득에만 몰두하는 비낭만파랄까? 아니면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 조작에 속지 않으려고 애쓰는 좁은 속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영화감독인 내게 여배우란 같이 작업하는 동료이고, 비즈니스 파트너다. 내가 여배우에게 사랑을 느끼는건 스크린 속의 모습에서가 아니다. 내가 그 여인들에게 사랑을, 강한 동료의식을 느끼고 존경심을 품게 되는 건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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