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무상원조자금 기대했다가 결국 무산
한국정부가 1974년 원폭피해자 치료를 전담하는병원을 전국 3곳에 건립키로 하고, 그 후보지로는 전북 정읍과 전남 순천, 경북 경주를 선정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20일 한국정부가 공개한 1974년 외교문서에 포함된 `한국인 원폭피해자 구호'라는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총 156쪽 분량인 이 문건에 의하면 한국정부는 보사부 주도로 △사업개요 △사업배경 △사업효과 △병원운영으로 구성된 `한국원폭 피해자 진료병원 설립계획'을수립했다. 이 문건이 담고 있는 내용은 지금까지 피상적으로 알려진 것보다는 원폭피해 치료 전문병원 설립 계획이 훨씬 구체적으로 추진됐다는 점이 매우 주목된다고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김은식 사무국장은 말했다. 1974년 11월25일자로 작성된 병원 설립계획안에 의하면 이 사업은 1945년 8월,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투하된 원폭 피해자 중 귀국 생존자와 그 가족 치료를 전담할 `현대적 종합병원' 건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한 병원 시설로는 3곳 모두 합쳐 대지 9만9천㎡(3만평)에 병원(총건평 6천900평)과 직업보도소, 재활원을 들었다. 병상 규모는 3곳 모두 80개를 제안했다. 나아가 병원 후보지로는 정읍ㆍ순천ㆍ경주의 3곳을 꼽았다. 정부가 "책임경영기관"을 맡게 되는 이들 전문병원 건립에 따른 소요액으로는병원신축비와 전문의 훈련경비 등을 합쳐 총 473만 달러를 제시했다. 문제는 이런 자금을 어디에서 확보하느냐는 것. 이에 대해 문건은 "병원건립비 및 훈련경비 전액을 일본국의 무상원조에 의하여확보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원폭피해자인 손진두 씨가 일본에 밀입국한 뒤 이 해 3월 30일 일본후쿠오카지방재판소에서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국인 원폭피해자도 치료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한 것을 계기로 일본의 무상원조금에 기대한 원폭치료 전문병원설립을 추진했음을 이번 문건은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 손진두 판결을 전후해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와 `한국인 원폭 피해자 구호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을 벌였다는 사실도 문건에서 드러났다. 이에 의하면 애초에 한국정부는 이 사업을 "한ㆍ일간 기존 경제협력의 범위 내에서 포함시키는 것은 사업의 의의를 격감시키는 것임에 인도적 사업으로 추진한다"는 방침 아래 "일반 무상원조"가 아닌 방식으로 일본정부 측에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문건에 따르면 일본정부는 "한ㆍ일 경협(경제협력) 중의 무상 원조로 시행"하되 "사업 규모는 10-20억 엔으로 가정할 때 아세아국 예산으로는 곤란하기에경제협력 방식 이외의 방법은 없음"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아울러 일본정부는 "서울공대 시월 원조사업(74-76) 후 (한국인 원폭피해자 구호) 실시"라는 방침을 고수했던 것으로 문건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원폭피해자 전문병원 설립계획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1979년 두 나라 집권당인 한국의 공화당과 일본의 자민당은 인도적 견지에서 재한 피폭자에 대한 도일 치료 지원에 원칙적인 합의를 봄에 이듬해 10명이 도일해 단기치료를 받았으며 1981년 12월1일에는 한국 보사부와 일본 후생성이 `재한 피폭자도일 치료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는 데 그쳤다. 애초에 야심차게 계획한 피폭자 전문치료병원 계획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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