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23 19:59
수정 : 2005.01.23 19:59
대통령상 ‘부활’
“정말 기가 막힙니다. 군사정권 시절 국전으로 되돌아가자는 겁니까.”
20일 낮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중견작가 ㄱ씨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그는 오전 동료로부터 한국 미술협회(이사장 하철경·이하 미협)가 이틀 전 언론에 공개한 대한민국 미술대전 개편안에 대한 소식을 듣고 경악했다고 했다.
미협 회원인 그가 열을 올린 건 이번 개편안이 60~70년대 국전처럼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 문화관광부장관상 등의 고위관직 시상제를 부활시켰다는 대목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번 미협 개편안을 두고 미술동네에는 시대역행적이란 반발이 거세다.
개편안은 최근 10여 년간 수상자 담합, 금전 뒷거래 등의 잇딴 비리로 위상이 땅에 떨어진 대전의 권위를 되찾는다는 명분 아래 국전 당시 시행된 대통령상 등의 시상제 방식 등을 되살렸다. 비구상과 구상, 공예, 서예, 문인화, 디자인 등 6개 부문별로 대상 1명과 우수상 4명, 특선자와 입선자를 뽑았던 방식도 바꿨다. 국전처럼 비구상(한국화·서양화·판화·조각), 서예, 문인화로 구성된 1부와 구상, 공예, 디자인 분야로 구성된 2부로 나눠 각각 대통령상 1명과 국무총리상 1명, 문화부장관상 2명, 문예진흥원장상 3명을 뽑겠다는 것이다. 상금은 대상 1000만원, 우수상 300만원에서 대통령상 3000만원, 국무총리상 2000만원, 문화부 장관상 1000만원으로 올렸다. 또 지명공모제 형식의 평론가상을 도입해 별도로 최고상 1명과 우수상 3명을 시상하도록 했다. 문화부는 이와관련해 지난 14일 개편안 승인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권위 높인다” 총리·장관상 ‘감투’
분야 세분화 “출품료 장사” 눈총
비난의 화살은 81년 국전 폐지 뒤 민간단체 미협으로 이관된 미술대전에 옛 관전의 잔영을 다시 입혔다는 미협의 수구적 발상과 이를 묵인한 문화부, 문예진흥원쪽에도 쏠리고 있다. 미협쪽은 “600여 개의 민관 공모전이 대부분 미술대전과 같은 대상, 우수상 제도를 시행해 상의 권위를 살리기 위해서는 차별화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협회 사무국 관계자도 “어차피 문예진흥기금으로 상금 주는 반관반민적 성격인데, 관료직위를 빌린 시상제가 무슨 문제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상당수 미술인들의 정서는 다르다. 김용태 민예총 부회장은 “고위관료직 시상제를 점차 폐지하는 정부 정책 방향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처사다. 문화부와 문예진흥원이 왜 이런 퇴행적 발상을 수용했는지 모르겠다”며 비판성명을 내겠다고 밝혔다. 다른 작가 ㅇ씨도 “프랑스 살롱전이나 일본 관전 등이 20세기 중반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왜 굳이 박정희 시대의 군사문화 망령을 꺼내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대통령과 미협의 권위 모두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고 혀를 찼다.
개편안의 모순은 또 있다. 미협은 구상, 비구상 2개 분야로 본상 시상범위를 줄이겠다는 방침과 달리 정작 6개 세부 분야별 특선, 입선작은 계속 따로 선정하고, 올해부터는 수채화 분야도 슬쩍 끼워넣었다. 결국 장르당 최대 2000건이 넘는 공모작들의 출품료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문예진흥원 미술대전평가위는 심층평가보고서를 통해 소수 정예 선발, 미협 적립금 10억원 재활용 등을 제안했으나 개편안에서는 자유공모·추천공모전 분리와 심사위원 일부의 외부인사 개방 등만 수용됐다. 문예진흥원쪽은 “대통령상 도입의 문제점을 지적했으나 미협쪽이 추진의사를 굽히지 않아 지명(추천)공모제를 도입하는 선에서 개편안을 수용했다”고 말했다. 한편 미협쪽은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국제연합 창설 60돌 각국 대표작가 기념전을 앞두고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할 참여작가로 하 이사장을 외교부에 추천해 다시금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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