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
반츨한 돌기둥 |
이용악(1914~1971)의 시 〈금붕어〉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함북 경성에서 나고, 토박이말을 시어로 잘 살려 쓴 월북시인의 한 사람이었다. “반츨한 돌기둥이 안개에 감기듯/ 아물아물 사라질 때면/ …”에 쓰인 ‘반츨한’을 〈시어 사전〉에는 ‘반질반질 윤이 나는’으로 풀이하였다. 문맥으로 짐작하여 그런 뜻의 말로 새겨 읽을 수도 있겠다.
우리말에 무엇이 보기 좋게 잘 자라서 미끈하거나, 일솜씨가 익고 시원스러운 모양을 나타내는 말에 ‘칠칠하다’가 있다. 북녘 방언으로는 ‘츨츨하다’다. 역시 이용악의 시 〈시골사람의 노래〉에 “이 녀석 속눈썹 ‘츨츨히’ 길다란 우리 아들도/ 한번은 갔다가/ 섭섭히 돌아와야 할 시골사람” 하는 구절이 보인다. 토박이말 그림씨에 이 두 형태의 줄어진 꼴 ‘-츨하다/-칠하다’가 붙은 낱말이 더러 있다. 그런데, 북의 문화어에는 아예 ‘츨하다’를 옹근 형용사로 다루어, 미끈하게 잘 자라서 길찬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 쓴다. 북의 소설 〈서산대사〉에 “우리 산에는 ‘츨한’ 상백피(뽕나무 뿌리껍질)가 없어서”라고 한 표현이 있다.
훤하고 미끈한 모양을 이르는 말에 ‘훤칠하다/훤츨하다(옛말)’가 있다. 문화어에는 거침새 없이(맷맷하게/밋밋하게) 곧은 모양을 이르는 말에 ‘매츨하다/미츨하다’가 있다. ‘매츨한 오리나무’, ‘매츨한 몸매’, ‘미츨한 봇나무 기둥’ 따위로 쓴다. 그러나, ‘매칠하다/미칠하다’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싱싱하다’에 가까운 함경도 방언 ‘생츨하다’를, 문화어에는 ‘생칠하다’로 다루어 생선의 물이 좋은 상태를 나타낸다.
이용악의 시어 ‘반-츨-한’은 ‘반질반질 윤이 나는’보다 ‘반듯하게 미끈한’에 해당하는 토박이 방언인 성싶다.
조재수/사전 편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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