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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5 18:43 수정 : 2005.01.25 18:43

전문가 “권력 자의적 상징물”
정조 대신 추사체 집자론도
유 청장 “새달 문화재위 소집”

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광화문 현판을 정조 글씨로 바꾸겠다는 문화재청 방침을 <한겨레>가 보도(24일치 1면)한 뒤 각계각층에서 새 현판에 대한 의견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학계·정치권·언론계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교체방식, 시기 따위를 놓고 다양한 주장들이 나왔다. 문화재청에는 하루 100통 넘는 전화가 걸려올 정도다. 최근 잇따라 공개된 박정희 정권 과거사 자료들의 재평가를 둘러싼 정치공방에 현판 교체 문제가 휘말려 문화재 복원의 본래 취지가 변질된다는 우려도 높다. 유홍준 청장은 언론과 인터넷에서 논란이 확산되자 현판 교체 문제를 판가름하기 위해 다음달 중 문화재위원회 소집을 요청하겠다고 25일 밝혔다.

음모론?=<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지들은 <한겨레> 보도 다음날인 25일치 신문에 주요 지면을 할애해 정치적 배경설을 잇달아 제기했다. 유 청장이 지난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독대하면서 개혁군주 정조와 닮았다고 말한 사실을 현판 교체 배경으로 지목한 것이다. 한나라당 반응도 민감했다. 박 전 대통령 딸인 박근혜 대표가 침묵한 가운데 25일 낸 성명에서 “청장만의 결정은 아닌 듯하다”며 정치적 측면을 의심했고, 일부 의원들은 박 대표 흔들기 의혹도 제기했다. 유 청장은 이에 “정조가 글씨가 빼어나고 문화적 성군임을 고려한 것인데, 일부 언론이 이를 노 대통령과 연결짓는 것은 정치적으로 반대 구실을 만들려는 의도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현판 교체의 당위성에는 공감한다. 권력자가 고증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쓴 상징물이란 사실 때문이다. 정양모 문화재위원장, 조순 민족문화추진회(민추) 회장 등은 원형 복원 측면에서 볼 것을 당부했다. 정 위원장은 “95년 총독부를 헐 때도 정치적 이유로 교체를 못한 난제를 이제야 푸는 것”이라고 했다. 한나라당 창당 주역인 조순 민추 회장도 “광화문 건물 복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판”이라며 “옛것에 가깝게 복원하려는 노력을 문제삼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술사가 최완수씨와 안휘준 서울대 교수 등은 광화문 건물 복원이 시작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판을 교체하는 것은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현판의 역사적 실재성을 강조하며 교체 불가론을 주장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다. 한편, 현판 교체 방침이 전해진 24일 수원시는 정조 어진을 보관해온 화성행궁 안 화령전(사적 115호) 운한각의 박 전 대통령 친필 현판을 떼고 서예가 정도준씨의 새 현판을 내걸었다. 수원시 쪽은 “현판이 낡아 문화재위 심의를 거쳐 교체했다”고 설명했다.

교체 시기, 방식이 문제?=학계에서는 정조 글씨가 새 현판에 들어갈 근거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들이 적지 않다. 김문식 서울대 규장각 학예사는 “광화문을 포함한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불타 정조 재위 때 폐허로 남아 있었다”며 “경복궁과 정조를 연관지을 고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서예계도 비문에서 집자한 정조 글씨가 현판에 적절한지 물음을 던진다. 판각장 오옥진씨는 “정조의 석왕사 비문 글씨는 현판에 쓰기엔 작고 필세도 약하다. 다른 필체와 대조하며 고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완수 실장도 “정조가 화성행궁에 편액을 내린 적은 있으나 현판은 원래 신하나 서예가들이 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자 현판 교체에 대한 한글단체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한글학회, 외솔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은 ‘광화문 한글현판 지키기 비상대책위’를 꾸려 26일 오전 서울 한글회관에서 ‘독재와 한글 현판은 별개’를 주장하는 궐기대회를 열기로 했다. 또 서단 일부는 김정희 등 옛 거장 글씨를 빌려 쓰자는 의견을 냈다.

앞으로 절차는?=현판 교체는 경복궁 복원 과정이므로 문화재위에서 논의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이에 따라 2월 소집할 문화재위의 판단이 주목된다. 회의는 사적·동산·건조물 분과 합동모임이 될 전망이다. 유 청장은 “정조 글씨 교체안을 안건으로 올리되 옛 한글 집자안, 서예가의 글을 받는 대안 등도 함께 상정해 심의 결과에 따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현판 교체를 승인해도 새 현판 제작은 건조, 다듬기, 단청 작업과 집자글 고침·새김 공정을 거쳐야 하므로 석달 이상 걸린다고 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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