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01 17:00
수정 : 2019.11.02 00:37
|
고 이영진 음악칼럼니스트. 박문선 제공
|
지난달 31일 오전 지병 악화로 타계
사고로 얻은 장애 딛고 음악 사랑 불태워
클래식 공연 평론가·칼럼니스트로 명성
“밤새워 쓴 그의 글, 항상 뜨거웠다” 회고
|
고 이영진 음악칼럼니스트. 박문선 제공
|
클래식 음악칼럼니스트 1세대인 이영진 선생이 지난달 31일 오전 세상과 작별했다. 고인은 2~3년 전부터 암으로 투병 생활을 해왔다. 그의 오랜 지인들은 “반복되는 투약과 시술의 고통에도 재활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라며 안타까워했다.
고인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였다. 젊은 시절 교통사고를 당한 뒤 몸을 잘 가누지 못하고 휠체어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음악을 듣고 글을 쓰는 것에 전념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열성 음악 애호가이기도 했다. 아픈 사람을 고쳐주겠다는 마음만큼 음악을 향한 사랑도 컸다.
고인은 신체적 한계에도 좌절하지 않고, 메스 대신 펜을 들어 음악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세상에 알리는데 진력했다. 그는 월간 <객석> <안단테> <코다 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잡지의 일급 칼럼 기고자였다. <한겨레> 등 일간지에도 공연 전문 리뷰어로 글을 쏟아냈다.
그가 생전에 낸 저서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반>(2005), <마이너리티 클래식>(2013)은 음악계 안팎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마이너리티 클래식>은 외면당하고 잊혔으나 진실하게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한 숨겨진 클래식 거장 49인을 재조명한 수작으로 꼽힌다.
고인과 15년 인연을 이어온 박문선 경기도립국악단 기획실장은 “이 선생이 체력도 약하고 손가락도 잘 움직이지 못하셨다. 그런데도 늘 공연을 보러 다니고 꾸준히 글을 쓰셨다. 공연장을 사랑하고 지켰던 훌륭한 분”이라고 회상했다. 정상영 전 <한겨레> 공연 담당 기자는 “연주회가 끝나면 전동휠체어에 몸을 의지해 힘겹게 집으로 돌아가 밤새 칼럼을 써서 이튿날 오전 원고를 보내오곤 했다. 매번 그 글은 뜨거웠다”고 말했다.
고인은 투병 중에도 글을 쓰는 등 의지를 불태웠다고 한다. 장일범 클래식평론가는 “최근까지도 글을 쓰고 아픈 몸을 이끌고 늘 공연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지인들이 걱정하면 “지금이 아니면 언제 글을 쓸 수 있겠냐”는 말로 안심시켰다고도 한다. 클래식에 대한 애정, 해박한 지식, 유려한 필력을 남긴 이영진 음악칼럼니스트. 그는 떠났지만, 그의 글 속에 살아 숨 쉰다.
“이제는 과거로 남겨지고 다시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지만 고 이영진 선생과의 추억이 새롭습니다…. 연주회가 열리던 날이면 선생이 콘서트홀 로비에서 전동휠체어에 앉아 환한 미소로 지인들과 담소하시던 그 모습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정상영 전 <한겨레> 기자)
빈소는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2일 오전. 유족은 아내와 딸이 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