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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7 15:09 수정 : 2019.12.07 15:16

마리드니즈 빌레르, <샤를로트 뒤발 도녜의 초상>, 1801년, 캔버스에 유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토요판]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24) 마리드니즈 빌레르, ‘샤를로트 뒤발 도녜의 초상’

마리드니즈 빌레르, <샤를로트 뒤발 도녜의 초상>, 1801년, 캔버스에 유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영국의 고전소설 <제인 에어>가 원래 샬럿 브론테가 아닌 남성의 이름으로 출판됐었다는 사실을 아는지. 여성 작가들에 대한 편견을 알고 있었던 브론테는 커러 벨이라는 남성 필명으로 원고를 냈는데, 1847년 출간되자마자 빅토리아 여왕까지 <제인 에어>의 애독자가 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평단의 찬사도 한 몸에 받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커러 벨이 사실은 31살의 여성이라는 게 밝혀지자 분위기는 180도로 바뀌었다. 갑자기 ‘작품에서 구사하는 언어가 놀랄 정도로 거칠고 공격적이며 선정적이다’라는 혹평이 나왔다. 문학잡지들도 여성 독자들에게 이 책을 읽지 말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소설은 그대로인 채 작가의 성별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문학계뿐이랴. 100년 후, 미술계에도 한 그림을 둘러싸고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1917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한 사업가가 사망하며 남긴 그림을 기증받았다. 이 그림은 한 여성 예술가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흰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살짝 몸을 구부린 채 앉아 있다. 오른손에는 펜을 들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은 화판을 잡고 있는 그녀는 드로잉을 하기 위해 화판에 시선을 고정하다 잠깐 고개를 든 것 같다. 마침 뒤에 있는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 때문에 그녀의 금발 머리는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우리를 응시하는 이 여성의 이름은 샤를로트 뒤발 도녜(1786~1868). 결혼 후 그만두긴 했지만, 실제로 이 그림이 그려진 1801년에 그녀는 화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쪽은 이 그림을 18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 거장 자크루이 다비드(1748~1825)가 그린 작품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즉각 고전적인 우아함과 훌륭한 공간 감각이 돋보이며 역광 처리가 우수하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프랑스의 대문호 앙드레 말로는 다음과 같이 극찬했다. “금이 간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온다. 그림의 색상은 페르메이르(베르메르)의 그림처럼 정교하고 진귀하다. 완벽한 그림이고, 잊을 수 없는 그림이다.”

그런데 1951년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찰스 스털링이라는 미술사학자가 이 그림은 다비드 작품이 아니라 여성 화가 콩스탕스 샤르팡티에(1767~1849)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스털링은 “영리하게 감춰진 약점, 섬세한 장치들 모두가 여성적인 기운을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고 주장했다. ‘완벽한 작품’이라고 칭송되던 그림은 곧바로 ‘허리부터 무릎까지 인체 비율이 맞지 않는다’, ‘여성 화가가 손을 그리기가 어려워서 몸 뒤로 감췄다’는 평을 듣는 허점투성이 그림으로 추락했다. 그림은 그대로인 채 화가의 성별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이 그림은 1996년이 되어서야 샤르팡티에가 아니라 또 다른 프랑스 여성 화가 마리드니즈 빌레르(1774~1821)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어릴 적부터 왜 역사책엔 여성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지 의아했다.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여성의 작품은 남성의 것으로 오인됐고, 여성의 성취는 의도적으로 폄훼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사시대 동굴 벽화를 남성만 그린 게 아니었음을,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여성이 설계하지 않았음을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영국의 여성학자 로절린드 마일스는 이런 질문을 했다.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나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여성이 했을 것이다! 만일 남자 요리사가 차렸다면 즉각 이름이 성경에 남았을 테고, 그는 그리스도교 성인이 되어 길이길이 존경받았을 테니 말이다.

이유리 예술 분야 전문 작가. <화가의 출세작> <화가의 마지막 그림>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 <검은 미술관> 등의 책을 썼다.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코너에서 ‘여자사람’으로서 세상과 부딪치며 깨달았던 것들, 두 딸을 키우는 엄마로 살면서 느꼈던 감정과 소회를 그림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풀어보고자 한다. sempre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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