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16 16:00
수정 : 2020.01.17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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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부재의 기억>으로 아카데미상 최우수 단편 다큐 부문 후보에 오른 이승준 감독.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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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재의 기억’ 만든 이승준
최초로 오스카 단편 다큐 후보에
“마음의 빚 갚을 기회라 여겨 2018년 완성
외국에 널리 알려달란 유족과의 약속 지켜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만하나
무뎌지면 반복될 것…아파도 계속 얘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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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부재의 기억>으로 아카데미상 최우수 단편 다큐 부문 후보에 오른 이승준 감독.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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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감독은 지난 2014년 4월16일 ‘그날’을 또렷이 기억했다. “다큐멘터리 편집 작업에 한창이었어요. 잠시 베란다에서 바람 쐬며 휴대폰을 보는데 세월호 뉴스가 떴어요. 걱정하던 중 ‘전원 구조’ 속보가 떠서 다행이다 싶었죠. 그게 아니라는 걸 뒤늦게야 알았어요.” 15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이 감독이 말했다.
동료들이 대거 진도로 내려갔다. 방송과 신문 등 기성 미디어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자 독립 피디들이 “우리가 기록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감독에게도 요청이 왔지만 내려가지 않았다. 다큐 후반 작업에 바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없어서였다. “뉴스도 잘 안 봤어요. 딸이 당시 중1이었는데, 길에서 교복 입은 애들만 봐도 못 견디겠더라고요. 카메라를 들고 찍을 자신이 없었어요.” 이는 부채의식으로 남았다.
그는 휴먼 다큐에 강점을 보였다. 장애인 커플의 사랑을 다룬 다큐 영화 <달팽이의 별>로 2011년 ‘다큐계의 칸영화제’로 불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국제다큐영화제에서 대상을 받는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던 중 2016년 말 미국 다큐 제작·배급 단체 ‘필드 오브 비전’이 그에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 대한 다큐를 만들어달라고 제안해왔다. 그는 감병석 프로듀서와 논의를 거쳐 “촛불 정국으로 이어지는 세월호 얘기는 어떠냐?”고 역제안했다. “마음의 빚을 갚을 기회라 생각했어요.”
진실을 파헤치기보다 그날의 고통에 집중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동료들이 참여한 ‘416 기록단’에서 방대한 현장 기록을 받고, 유가족의 도움을 얻어 아이들 휴대폰 촬영 영상도 구했다. 잠수사와 유가족을 인터뷰했다. 담담하게 재구성한 그날, 그 고통의 시작에는 ‘국가의 부재’가 있었다. 어느 하나 제 기능을 못 한 국가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29분짜리로 완성한 다큐에 <부재의 기억>이란 제목을 붙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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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의 기억>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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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영화가 완성된 뒤 유가족 상영회를 했다. 유가족들은 배만 봐도 힘들어했다. 중간에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영화가 끝난 뒤 한 유가족이 다가와 말했다. “감독님, 외국에 가서 많이 알려주세요.” 이 감독은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2018년 11월 미국 뉴욕다큐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미국 잡지 <뉴요커>가 유튜브 계정에 올린 영상은 240만회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미국 관객들이 이해할까 걱정했는데, 상영회에 가보니 기우였어요. 선장 혼자 탈출하는 장면이나 청와대에서 대통령 보고용 영상만 찾는 대목에선 관객들이 웅성거려요. 뭐가 문제인지 아는 거죠. 상영 뒤 불이 켜지면 다들 눈이 벌게요. ‘우리도 비슷한 일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말도 해요.”
뉴욕다큐영화제 수상 덕에 미국 아카데미상 심사에 자동으로 포함됐다. 결국 지난 13일(현지시각) 제92회 아카데미상 최우수 단편 다큐 부문 후보작으로 호명됐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더불어 한국 영화 사상 첫 쾌거다. “기분이 복잡했어요. 기쁘면서도 (비극을 다룬 소재인 만큼) 마냥 좋아할 일인가 싶었죠. 그래도 유가족과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어요.”
이 소식에 국내에서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유튜브에서 ‘인 디 앱선스’(in the absence)로 검색하면 영화를 볼 수 있다. 유튜브에는 “보고 나니 또 힘들다. 우리 시대의 트라우마. 하지만 이렇게 계속 아파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거겠지”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이제 그만 좀 하자는 얘기가 가장 무서워요.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만 둘 수 있겠어요? 무뎌지면 반복될 수밖에 없어요. 아파도 계속 얘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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