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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04 05:00 수정 : 2018.07.04 09:48

“세상을 웃기고 싶다”는 지망생들이 지난 6월28일 <한국방송> 공개홀에 모였다. 2년 만에 열린 <한국방송> 개그 공채에 800명이 지원했다. 개그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시청률이 저조한 등 개그의 위상이 떨어지고 있지만, 이들의 열정이 있어서 미래는 밝다. 개그맨 선발 현장에서 심사를 맡은 피디·작가들이 참가자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다.

2년만의 KBS 공채 개그맨 선발 현장

7전8기 도전에 38살 등 800명 지원
식당 서빙·막노동 등 하며 꿈 키워
‘코터+개인기’ 겨뤄…5일 최종 시험
개콘 피디 “잠재력과 가능성 봤다”
개그맨 돼도 개그시장 축소돼 고민

“세상을 웃기고 싶다”는 지망생들이 지난 6월28일 <한국방송> 공개홀에 모였다. 2년 만에 열린 <한국방송> 개그 공채에 800명이 지원했다. 개그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시청률이 저조한 등 개그의 위상이 떨어지고 있지만, 이들의 열정이 있어서 미래는 밝다. 개그맨 선발 현장에서 심사를 맡은 피디·작가들이 참가자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다.
남을 웃기는 게 좋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장기자랑은 늘 내 몫이었다. 애들이 웃으면 나도 행복했다. “개그맨이 되어 더 많은 이들을 기쁘게 해줘야지!” 고등학교 때 본격적으로 개그맨을 꿈꿨다. 제대 뒤 스물여섯살 때부터 극단을 전전하며 개그를 배웠다. 일주일에 사흘 밤을 새며 코너를 짜고 무대에 섰다. 지망생이라 돈 한푼 못받았지만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게 행복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했다. 공연 없는 주말이면 행사 사회며 음식점 서빙,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했다. 몸은 고됐지만, 마음은 즐거웠다. 하지만, 세상을 웃기고 싶다는 바람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2011년부터 7년째 방송사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어느덧 서른두살. 불안한 미래에 다른 길도 고민했다. 하지만 개그에 대한 열정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 미치도록 세상을 웃기고 싶다!’ 그래서 오늘 또 다시 개그의 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참가번호 215번 박준입니다.”

지난 6월28일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KBS) 공개홀에는 400여명의 ‘박준’이 있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세상을 웃기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모인 개그 지망생들이다. <한국방송>이 2년 만에 공채 개그맨을 선발하면서 총 800명이 지원했다. 1차 서류전형(대본+지원서)에 합격한 445명이 이날 실기 시험을 봤다. 그 중 71명이 5일 최종 시험을 치른다. 양혁 <개그 콘서트> 피디는 “우리와 함께 커갈 수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한국방송> 공채 개그맨 선발 현장에서 지망생들이 다양한 개그를 선보이고 있다.
2년 만에 날아든 공채 소식에 모여든 이들은 더 치열해지고 간절해졌다. 지원자들은 당장 무대에 올려도 손색없을 기승전결을 갖춘 ‘코너+개인기’로 시험을 봤다. 매년 시험을 봤다는 한 지원자는 “예전에는 ‘한번 봐볼까’라며 준비없이 오는 지원자들도 있었는데 올해는 모두 준비를 많이 해오는 등 더 간절해졌더라”고 말했다. 콩트에 필요한 보조 출연자 ‘도우미’도 직접 데리고 오고, 라디오로 음향효과를 내고 필요한 소품도 만들어왔다. 자신의 시험 외에도 함께 지원한 친구의 도우미로 참여하느라 한 지원자가 시험장에 2~3번 들어오기도 했다. 민병록씨는 “시험을 준비하며 1주일 동안 지하 연습실에서 나오지 않고 오직 개그만 생각하며 콩트를 짠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극단 단원으로 오랫동안 무대에 섰거나, 학교 코미디학과나 개그 동아리에서 코미디를 배운 이들이 대부분이다. 요즘은 개그맨이 학원을 차려 개그를 가르쳐주는 아카데미도 늘었다. 정통 연극인, 수학 강사, 현직 군인, 인터넷 쇼핑물 대표 등 다른 직업을 가졌지만 개그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도전하기도 했다. 연극 <조씨 고아> 등에 출연했던 연극인 한지혜씨는 “원래 남을 웃기는 걸 좋아해 개그에 도전했다. 개인 돈으로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연습실을 빌려 연습했다”고 말했다. 신문방송학과를 나와 기자, 피디를 꿈꿨던 허성주씨는 “어렸을 때부터 남을 웃기는 걸 좋아했다. 여러 직업을 겪었지만 결국 초등학교 때 꿈인 개그맨을 버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얌전해 보이는 한지혜씨는 동료와 2인조와 나와 원숭이 흉내를 내는 등 자신을 ‘내던졌다’. 남을 웃기고 싶다는 디엔에이(DNA)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다른 직업을 갖고 있지만, 올해 처음 지원한 강준희씨는 “어렸을 때부터 남들을 웃기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며 웃었다.

하지만 마음놓고 코미디만 하기에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개그 프로그램은 <개그콘서트>와 <코미디빅리그> 뿐이고, 공채 시험도 <한국방송> 뿐이다. 코미디 극단이 활성화되고 있다지만, 지망생들에게는 남의 얘기다. 지망생들은 극단에서 돈 한푼 받지 않고 무대에서 자신이 짠 개그를 선보인다. 지망생들끼리 십시일반 돈을 모아 극장을 빌려서 무대에 서는 게 대부분이다. 개그를 검증받는 목적이어서 무료 공연이 많아 수익도 없다. 민병록씨는 “지난 4년간 한달 평균 40만원으로 생활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부분 식당 서빙, 대리운전, 막노동 등 아르바이트를 병행한다. 허성주씨는 “개그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서빙 등 1주일에 아르바이트를 3개 정도 한다”고 했다.

<한국방송> 공채 개그맨 선발 현장에서 한 지망생이 열연하고 있다.
그래도 힘든 현실이 열정을 이길 순 없다. 이들은 “꿈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대학에서 개그동아리를 하면서 올해 처음으로 공채에 도전했다는 김찬민씨는 “졸업하면 극단에 가서 코미디를 하면서 공채에 계속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극단 생활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개그를 하고 싶다는 열정이 더 커서 수익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부딪혀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이도 꿈을 막을 수는 없다. 38살인 한 지원자는 1차 서류 전형에서 탈락했지만, 이날 후배 시험에 ‘도우미’로 참여해 쫄쫄이를 입고 들어와 손가락을 의인화한 개그를 선보였다. 그는 “이렇게라도 내가 짠 개그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작 이들을 힘들 게 하는 건 추락하는 개그의 위상이다. 요즘은 공채에 뽑혀 개그맨이 되어도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 올해 6번째 공채에 도전했다는 엠씨(MC) 반석씨는 “<웃찾사>도 폐지되고 <개그콘서트> 시청률도 5%대에 불과하다. 개그 시장이 축소되니까 꿈을 향해 달려가고 싶지만, 달려갈 수가 없게 된 것 같아 새로운 일을 찾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영후씨는 “공채를 뽑는 곳은 <한국방송>이 유일한데 내년에 또 안할 수도 있으니 걱정이다”고 말했다.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유튜브 등에 자극적인 소재가 많아지고, 공중파에서 웃길 수 있는 소재가 한정적인 환경도 이들의 꿈을 꺾는다. 유튜브에 자신의 지원 과정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던 민병록씨는 “길이 줄어들고 작아지는 느낌이어서 포기하시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웃기기를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때론 꿈이 짐처럼 느껴지지만, 남들이 나 때문에 웃으며 행복해할 때 기쁘다” (김영후)

미디어가 다양해지면서 공채가 답은 아니라는 분위기도 있다. 한 중견 개그맨은 “유튜브 등에서 활약하는 재미있는 친구들을 출연시키는 등 다른 방법을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지원자인 엠씨 반석씨는 “극단에서 재미있는 개그맨을 발굴해 텔레비전에 출연시키는 시스템이 형성될 것 같다”고도 했다. 양혁 피디는 “변화의 시기다. 코미디 연기자를 기르고, 코미디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은 현재 상황에서 공채는 필요하다”며 “선발방식이나 개그 포맷 등에서 다양한 변화를 고민중이다”고 말했다.

글·사진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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