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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20 19:25 수정 : 2018.07.20 23:09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 드라마 <몸을 긋는 소녀>

기자 카밀 프리커(에이미 애덤스)의 고향 윈드갭에서 10대 소녀들이 연이어 살해·실종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특종에 목마른 편집장은 카밀에게 사건을 자세히 취재하고 극적인 기사를 써오라고 지시한다. 카밀에게는 오래전 고향을 떠나 다시 돌아갈 수 없었던 개인적 사정이 있다. 하지만 편집장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윈드갭을 찾아가게 된다. 오랜만에 방문한 고향집에는 신경증에 시달리는 엄마 아도라 크렐린(퍼트리샤 클라크슨)과 고급 오디오에 미친 새아빠 앨런(헨리 체어니), 그리고 낯선 이부 자매 애마(일라이자 스캔런)가 살고 있다. 잔혹한 범죄가 되살린 어린 시절의 악몽과 불편한 가족들은 카밀의 정신을 점점 불안정하게 몰아간다.

2018년 하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평가받았던 범죄스릴러 <몸을 긋는 소녀>(원제 Sharp Objects)가 에이치비오(HBO)에서 공개됐다. 영화 <나를 찾아줘>의 원작자 길리언 플린의 동명 데뷔 소설을 드라마로 옮긴 작품이다. 쓰는 작품들이 잇따라 영화화돼 큰 성공을 거두면서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떠오른 길리언 플린의 원작, 톱배우 에이미 애덤스 주연,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오스카상 후보 감독 장마크 발레의 연출 등 작품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만 봐도 화려하기 그지없다.

이달 초 드디어 실체를 드러낸 드라마는 첫 회만으로도 그 명성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살인사건 추적에 초점을 맞추는 전형적인 범죄스릴러가 아니라, 그 사건으로 인해 흔들리는 인물들의 어두운 심리를 예리하게 조명하는 원작의 개성이 영상에 그대로 옮겨졌다. 잘게 부서진 유리 조각처럼 이야기 곳곳에 흩뿌려져 언제 머릿속을 파고들지 모를 단서들, 잔혹한 범죄묘사 없이 보는 이들의 숨을 서서히 옥죄는 세밀한 심리묘사, 그리고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물 흐르듯 유려하게 넘나드는 연출은 한 시간을 1분으로도 한나절로도 느끼게 만든다.

무엇보다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스릴러’라는 길리언 플린 특유의 작품세계가 이번에도 유감없이 펼쳐진다. 범죄스릴러 장르에서 흔히 무참히 희생당한 피해자의 얼굴로나 묘사되는 여성들은 여기에 없다. 사건을 조사하면서 유년의 비밀스러운 상처와 마주하게 되는 카밀을 비롯해서 쉽게 해독하기 어려운 여성들의 복잡하고 섬세하며 예민한 표정들로 가득하다. 카밀의 새아빠,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와 보안관, 피해자의 아버지, 용의자로 주목받는 소년 등 남성 인물들의 인상이 하나같이 흐릿한 것과 무척 대조적이다.

당연히 여성 배우들의 열연도 두드러진다. 아직 첫 회인데도 에이미 애덤스, 퍼트리샤 클라크슨, 일라이자 스캔런 등 세 모녀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마주하고 스쳐가는 장면마다 예민한 신경줄을 건드리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단 한 장면의 등장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재키 역의 엘리자베스 퍼킨스도 빼놓을 수 없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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