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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3 15:16 수정 : 2005.02.13 15:16



사진 12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55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디터 코슬릭(오른쪽) 집행위원장이 임권택 감독에게 명예 황금곰상을 수여하고 있다.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상을 받은 임 감독은 “내 영화인생에서 가장 큰 상으로, 한국영화가 세계 수준에 왔음을 확인해 주는 것으로 본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화제 기간동안 임권택 감독 특별회고전도 열려 서편제 등 7편이 상영된다. 베를린/로이터 연합

베를린영화제 명예 황금곰상 수상


한국 영화계의 원로인 임권택(71) 감독이 12일 제55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명예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임 감독은 이날 베를린 필름 팔라스트에서 디터 코슬릭 베를린 영화제 조직위원장으로부터 "오랜 세월에 걸친 작품 활동을 통해 한국과 아시아, 나아가 세계 영화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명예 황금곰상을 받았다.

코슬릭 조직위원장은 "임 감독은 작품의 수나 그 주제와 소재의 다양성 면에서 아시아에서 독보적인 존재이며, 영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임 감독은 "개인의 영화 인생을 영화제 측이 평가해 줬을뿐 아니라 한국 영화가 세계적 수준에 있음을 재확인한 것으로 생각돼 매우 기쁘다"면서 "한국 영화를 만들어왔던 모든 영화인들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이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임감독은 "데뷔 후 10여년 동안 할리우드 영화를 모방한 오락영화를 양상했던 것을 반성한 뒤 내가 직간접으로 체험했던 삶의 이야기를 거짓 없이 진솔하게 영화에 담고자 노력했던 일이 평가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권영민 주독대사와 영화진흥공사, 베를린 영화제 조직위가 공동 주최한 축하 리셉션장에는 각국 영화인들과 영화학도, 외교관 등 2백여명이 참석해 잇따라 질문을 던지며 임 감독의 영화에 관심을 표명했다.

베를린 영화제 측은 이날 시상식이 끝난 뒤 상영한 `춘향뎐'을 비롯해 임감독의 대표적 작품 7편을 `특별회고전' 형식으로 소개한다.

특별 회고전은 영화제측이 영화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거장 감독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비정규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행사다.

또 영화제는 오는 20일 끝나지만 `만다라', `길소뜸', `왕십리', `서편제', `축제' 등 20편이 내달 말까지 베를린 아르제날 극장에서 계속 특별 상영돼 독일 관객들에게 임 감독의 영화 세계를 보여주게 된다 한편 지난해 김기덕 감독이 `사마리아'로 감독상(은곰상)을 받았던 베를린 영화제에 올해에는 경쟁부문 본선에 오른 한국 영화가 없으나 박철수 감독의 `녹색의자'등 4편이 비경쟁 부문에 초대됐다.

또 비공식 프로그램으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여성의 문제를 다룬 한원상 감독의 다큐멘터리 `내 청춘을 돌려다오'가 상영된다. (베를린/연합뉴스)


■ 베를린영화제 명예황금곰상 임권택 감독 인터뷰

▲ 씨네21
"제가 걸어온 영화인생을 인정받고 한국 영화가 세계적 수준에 있음을 재확인시켜주는 것이어서 매우 기쁘며, 한국 영화를 함께 만들어온 모든 분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제55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지난 12일 명예 황금곰상을 수상한 임권택(71) 감독은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것이며, 수많은 선후배들이 노력해온 토대 위에 내가 이를 대신해 받게 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음은 임 감독이 이날 시상식과 앞서 있었던 기자회견 및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밝힌 수상 소감을 정리한 일문일답 요지.

--수상 소감은?

▲1982년에 `만다라'를 들고 베를린 영화제에 처음 참가한 이래 7-8 차례나 문을 두드렸으나 한 번도 상을 탄 일이 없다. 텃세가 심하고 문턱이 높다며 불만하기도 했으나 오늘 이런 큰 상을 받게돼 행복하다.

-- 어떤 이유로 상을 받게 됐다고 보는가?

▲직간접으로 체험했던 삶의 이야기를 거짓 없이 진솔하게 그리려 오랜 세월 노력했던 점이 인정받은 것 같다. 특히 한국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수난과 상처의 시대를 나름의 시각과 영화적 방법으로 표현해온 것이 평가받은 것으로 본다.

--세계적으로 영화 1백편을 감독하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이 임 감독 영화의 주제와 소재가 다양하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어떤 비결이 있는가?

▲데뷔 후 10여년 간 오락성 영화를 50편 가량 남발했으며, 미국에 맞먹는 할리우드식 영화를 만들려 했다. 1970년대 중반에 이것이 허황된 꿈인 것을 깨닫고 감독으로서 생존을 위해선 나만의 세계와 방법이 필요하다고 반성했다. 이후 내 영화는 주제는 선명했으나 아무도 봐주지 않는 재미없는 것이 됐다. 이 점을 다시 반성해 주제와 소재에 맞는 대중친화적 방법도 도입해왔으며 무엇보다 우리의 신실한 삶의 모습들을 담으려 했다.

--그간 만든 영화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일단 완성한 뒤에 내 영화를 잘 안본다. 나중에 보면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겨우 저 모양으로 만들었나 하고 후회하기 때문이다. 작품이 자식 같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대표작이라고 생각하는 영화도 없다. 다만 상을 받았거나 흥행이 잘됐다거나 하는 객관적 평가를 받은 작품들이 있을 뿐이다.

--한국영화가 최근 세계 영화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국내에서도 할리우드 영화에 맞서 시장을 지킬 수 있는 배경은?

▲한국에선 일제 식민 치하와 해방, 한국전쟁, 군사정권 등으로 이어지는 오랜 세월 동안 영화 제작 사전 사후에 엄격하고 가혹한 통제가 이뤄졌다. 1980년 대 후반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소재 선택과 표현의 자유가 넓어졌으며, 우리 사회 특유의 역사와 경험 속에 좋은 영화 소재들이 많았다. 경제성장과 맞물린 제작여건 개선, 야무진 실력을 갖춘 새로운 영상 세대의 등장 등 여러 여건이 함께 작용했다.

--평생 이런 작품 하나는 남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나?

▲젊을 때는 그런 생각도 하지만 나이 들면서 과거 해보고 싶었던 소재를 보면 부질없다고 느낀다. 물론 70년대부터 만들고 싶었던 `서편제'를 20년이 지난 뒤 찍게 된 것 등 가슴 속에 오래 머무는 소재와 주제들은 있다. 그러나 일생에 단 한편 남기고 싶고 꼭 해와야 겠다고 한 작품은 없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재 구상 중인 차기 작품은?

▲아직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않아 구체적 내용은 밝히기 어렵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어느 주제와 소재를 선택하더라도 영화에는 항상 직간접적으로 한 시대와 그 속의 삶들이 어떤 식으로든 반영된다. 주변에서 100번째 작품이라고 많은 말을 해 그 부담 때문에 정신적으로 많이 시달리고 있다.

--흥행에만 치우친다고도 비판받는 한국 영화계 후배들에 대한 평가는?

▲과거 오락영화를 남발했던 내가 충고하는 일은 주제넘는 일로 보인다. 조폭영화를 비판하지만 그런 영화도 필요하다. 할리우드식 최고 영화를 만들려다 도망친 나와 다르게 후배들은 할리우드 아류를 만들면서도 패기있게 정면으로 맞서 흥행과 작품성 모두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다만 지금 세대는 영화를 공부하고 제작하는 여건과 실력 등에서 우리 세대보다 훨씬 뛰어나므로 우리의 진짜 삶이 묻어나는 영화를 만드는 일도 더 잘할 수 있을 것으로 보며, 그러기를 희망한다.

--감독생활은 언제까지 할 것인가?

▲나는 영화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영화를 안하면 달리 할 일도 없다. 그 때문에 지금 까지 살고 있는 것도 같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영화를 만들다가 끝내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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