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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족 출신 고바디 감독
‘취한 말들을 취한 시간’ 보다
더 암울한 더 측은한
이라크 아이들 핏빛 서정시
과연 ‘아이스럽다’거나 ‘아이다움’이라는 말에는 어떤 상황에도 대입가능한 본질이 존재할까. 쿠르드 족 출신의 이라크 감독 바흐만 고바디의 영화를 보면 이런 질문에 빠질 수밖에 없다. 고바디 감독은 전쟁이 남긴 지독한 가난과 어른들의 방치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거는 아이들을 그린 첫 장편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에 이어 세번째 장편 <거북이도 난다>에서 다시 폐허 속 아이들의 삶에 밀착한다. 여기에는 ‘천진함’, ‘생명력’같은 수식어가 끼어들 틈이 없다. 어른보다 더 피로하고 늙어버린 눈빛을 지닌 아이들에게 희망이나 꿈을 이야기하는 건 파렴치하게 느껴질 정도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보다 더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를 펼쳐놓는 <거북이도 난다>는 등장하는 아이들에게 측은함을 느끼기 전에 화면에서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는 암울한 영화다.
이라크 전쟁 발발 직전의 국경지역. 후세인의 탄압을 피해 난민처럼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는 여자아이 아그린과 두 팔을 잃은 소년 헹고, 그리고 이들이 안고 다니는 서너살 짜리 아기가 있다. 아기는 아그린이 내전중 이라크 군에게 당한 성폭행으로 태어났다. 아그린은 밤마다 부모를 죽이고 자신을 짓밟은 그날의 악몽에 시달리고 낮이면 절벽에 올라 자살을 꿈꾼다. 말을 잃어버린 이 어린 가족의 반대편에는 집집마다 ‘위성’안테나를 달아주며 골목대장을 자임하는 ‘위성’이라는 별명의 소년이 있다. 아이들은 위성을 따라다니면서 지뢰를 캐고 포탄 깍지들을 운반하는 위험천만한 일을 하면서 먹고 살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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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임박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위성은 지뢰를 팔아 번 돈으로 마치 5일장처럼 들어선 무기상에서 두자루의 총을 사고 아이들과 간이 교실 옆에 참호를 판다. 수백대의 전투기가 공습을 하고 수천개의 폭탄이 떨어질 전장에서 싸우기 위해 총 두자루를 준비하는 위성의 모습은 어처구니없다. 그러나 그 옆에서 “너네같은 어린애들은 이런 짓을 할게 아니라 수학이나 국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는 어른의 말은 더 공허하게 들린다. 사실 2시간동안 이어지는 화면에서 무력감과 환멸 말고는 다른 어떤 느낌도 찾기 힘들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에 담겨 있던 가느다란 생의 의지도 이곳에서는 실종돼 버렸다. 어른들은 지뢰를 묻고, 아이들은 그 지뢰를 캐서 어른들에게 되팔고, 그 지뢰가 다시 묻혀지는, 그리고 그 와중에 아이들의 팔다리가 잘려져나가는 비극만이 돌림노래처럼 반복될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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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미군의 이라크 점령 2주 뒤 이 국경지역에 왔다가 <거북이도 난다>를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모든 등장인물이 실제 그곳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상흔을 ‘전시’한다는 비판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전쟁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고자 카메라를 들고 전투하는 감독에게는 그런 혐의조차 사치처럼 느껴졌을 법하다. <거북이도 난다>는 <취한 말…>보다 강도높게 그 비극을 고발하고 있지만 <취한 말…>에서 철저하게 따랐던 리얼리즘의 어법을 조금 벗어나 있다. 벼랑 끝에서 투신하는 아이, 지뢰밭에 버려진 아기 등 차마 응시하기 너무 고통스러운 현실이 꿈처럼, 팬터지처럼 다가온다. <거북이도 난다>는 현실의 참혹함이 상상의 수준으로 비약해버렸을 때야 그려질 수 있는 소름끼치도록 슬픈 팬터지 영화다. CJ가 배급하는 첫 독립영화로 CGV 상암, 강변, 인천, 서면과 씨네큐브, 씨네코아에서 22일 개봉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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