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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7 20:00 수정 : 2005.01.27 20:00



쿨하게 버무린 ‘선악 대결’

착한 어린이가 나쁜 어른과 싸우는 이야기는 많다.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도 그런 이야기지만, 이 영화에선 착한 어린이를 돕는 착한 어른들이 없다. 아니 착한 어른들은 있는데 그들은 어린이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들이 어린이의 말이 옳았음을 깨달았을 땐 이미 위험에 빠진 뒤다. 그래서 그들은 도움이 되질 않는다. 결국 나쁜 어른과 싸울 이는 어린이 자신밖에 남지 않는다.

여기서 나쁜 어른은 <나홀로 집에>의 도둑들처럼 멍청한 잡범이 아니다. 박학다식하고 연극을 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면서 사람을 스스럼 없이 죽이는 연쇄살인마이다. 죽일 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한 집을 통째로 불태우고, 거머리에 물어뜯겨 죽게 하고, 어린이들을 기차에 깔아죽이려고 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나쁜 어른이 등장하는 <레모니…>는 이야기 자체만 놓고 보면 어린이용이라고 여기기 힘들 만큼 끔찍하다. 또 나쁜 어른에게 수난받는 연약한 어린이라는 구도는 <장화홍련전>이나 <신데렐라>처럼 청승맞은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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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영화는 그리 끔찍하지도, 청승맞지도 않다. 동화 같은 비약과 과장, 우화적인 인물 묘사, 어두우면서도 환상적인 공간 연출을 통해 새롭고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영화에서 나쁜 어른은, 고아가 된 어린이 삼남매의 유산을 빼앗기 위해 갖은 악행을 저지르는 울라프 백작(짐 캐리)이다. 착한 어린이는 이 삼남매로 발명에 재주가 비상한 바이올렛, 독서광 클라우스, 그리고 무엇이든 물어뜯는 게 특기인 서너살 남짓의 써니이다.

고아 삼남매 유산 빼앗기 대작전
감쪽같은 변신 거듭 “과연 짐 캐리”

삼남매는 원인 모를 화재로 집이 불타 부모가 죽고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됐다. 후견인 제도에따라 셋은 자신들을 키워줄 친척 어른 집을 전전한다. 한 친척의 집에 가면, 울라프가 나타나 그 친척을 해친다. 그러면 또 다른 친척 집으로 간다. 또 울라프가 나타난다. 울라프는 그때마다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지만, 아이들은 알아챈다. 문제는 친척 어른이 이 아이들의 말을 듣질 않는다. 그리곤 차례로 살해당한다. 그때마다 삼남매는 저마다의 장기를 지혜롭게 활용해 살아남는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구도를 다시 정리해보면 이렇다. 울라프 백작은 절대악으로 변수라기보다 상수에 가깝다. 절대선인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럼 변수는 뭘까. 이 어린이들의 말을 믿고 그들을 울라프 백작으로부터 보호해줄 의지와 능력을 갖춘 어른이 있냐는 것이다. 영화는 곧 그런 어른을 찾아나서는 여행기인데, 이 여행은 번번히 실패한다. 그러면서 어린이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을 키워간다. 언젠가 이 어린이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줄 어른에 대한 기대조차 버려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물론 가슴은 아프지만) 이만큼 훌륭한 성장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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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핸들러의 소설 ‘레모니 스니켓’ 시리즈 첫 세권을 묶어 각색한 <레모니…>는 정치적으로 매우 올바른 동화다. 여기서 삼남매는, 연약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보는 이의 감정을 자극하는 이야기의 장치로서의 ‘어린이’라기보다 그냥 ‘어린 인간’에 가깝다. 그들은 울지도 않고 귀여운 표정을 짓지도 않는다. 쿨하다. 이 쿨함이 청승을 떨쳐낸다. 관객도 속을 만큼 감쪽같은 변신을 거듭하면서 능청을 떠는 짐 캐리에게선 고전적인 코미디 연기의 품격같은 게 전해진다. 또 영화는 친척들을 전전하는 여행마다 다른 분위기의 볼 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잘 짜여진 큰 구도에 비해 영화의 디테일의 배치가 단선적이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가 되풀이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아쉬움이 있다. 브래드 실버링 감독. 27일 개봉.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사진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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