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19 04:59
수정 : 2018.12.19 08:39
<스윙 키즈> vs <마약왕> 연말 흥행 맞짱
강형철 감독 ‘스윙 키즈’
한국전쟁 포로수용소 배경
동족상잔 비극·남북 이념대결 등
냉혹한 무게감에 깨알 웃음 더해
도경수, 아이돌에서 진짜 배우로
우민호 감독 ‘마약왕’
‘수출역군’‘외화벌이’ 대표되는
고도 압축 성장기 1970년대 민낯
과도한 장면·마무리 아쉽지만
명품 배우들 원숙한 연기력 빛나
<과속스캔들>, <써니>의 강형철 감독과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두 감독이 들고 온 겨울 텐트폴 영화가 같은 날(19일) 스크린에서 결전을 벌인다. 100억원대를 훌쩍 넘는 제작비와 충무로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조합으로 화제가 된 <스윙키즈>와 <마약왕>. 두 작품 모두 한국전쟁과 1970년대라는 한국 현대사의 한 시기를 절묘하게 훑어내면서 주제의식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공통점을 갖기에 둘의 대결이 더욱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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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윙키즈>의 한 장면. 뉴(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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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내려놓고 춤으로 한판 붙자”…<스윙키즈> <스윙키즈>는 시대와 음악, 그리고 이념의 소용돌이가 ‘탭댄스’라는 하나의 리듬을 타고 133분 동안 조화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2008년 822만명을 모은 <과속스캔들>, 2011년 745만명을 동원한 <써니>로 이미 ‘진정한 대중성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준 강형철 감독이 이번엔 ‘춤’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날카롭고 세심하게 벼려 관객의 가슴을 공략한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 미국인 소장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홍보하기 위해 브로드웨이 댄서 출신인 잭슨(자레드 그라임스)에게 남북한 포로 중 몇을 뽑아 댄스단을 결성하도록 한다. 오합지졸 포로들 사이에 그나마 가능성을 보여 선발된 단원은 북에서 온 로기수(도경수)와 남한 소녀 양판래(박혜수), 강병삼(오정세), 중공군 출신 샤오팡(김민호)이다. 이들은 처음엔 각자의 목적을 위해 댄스단에 합류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탭댄스에 대한 열정과 서로에 대한 우정을 바탕으로 댄스단의 성공을 위해 분투한다.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이들 5명을 비롯해 수많은 조연까지 공들여 세공해 낸 감독의 ‘정성’이다. 전쟁통에 부모를 잃고 동생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양판래, 전쟁 통에 생이별한 아내를 찾기 위해 헤매다 포로가 된 강병삼, 징집이 되지 않았다면 이름 날리는 안무가가 됐을 샤오팡, 러시아 무용수마저 울릴 만큼 놀라운 춤 실력을 갖춘 북한 소년 로기수, 그리고 엄존하는 인종차별 속에 입대한 흑인 잭슨까지…. 탭댄스 연습이 진행됨에 따라 이들의 사연은 그 사이사이 빈틈을 쫀쫀하게 메우며 관객을 울리고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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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윙키즈>의 한 장면. 뉴(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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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의 상흔과 한 핏줄을 갈라치기 하는 남과 북의 첨예한 이념대결 등 수용소의 현실이 눅눅하게 배어든다. 감독은 영화가 동화처럼 따스한 숨결을 내뿜을 즈음마다 서로의 가슴팍에 총부리를 겨누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던 엄혹한 역사적 상황을 ‘빨갱이’, ‘반동분자’라는 대명사에 실어 일깨운다. 시종일관 황홀한 판타지의 가벼움과 냉혹한 시대극의 무게감 사이를 아슬아슬 줄타기하며, 예측할 수 없는 결말을 향해 관객도 함께 줄달음질 치게 하는 감독의 재주가 놀랍다.
마치 갈지자 행보인 것 같지만 <스윙키즈>는 균형감을 놓치지 않는다. “공산주의건 자본주의건 미국이든 소련이든 지들 좋자고 만든 것이지, 그게 우리랑 대체 뭔 상관이냐”는 대사는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향해 쏘는 애잔하고도 직설적인 메시지다.
도경수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수확이다. 순수하지만 물기가 밴 슬픈 눈망울은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민족의 슬픈 운명을 직감케 한다. 앙다문 입술 사이로 믿을 수 없을 만큼 리얼하게 쏟아지는 북한 사투리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단번에 떼어버리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5개월 넘게 갈고닦았다는 현란한 탭댄스에서 엿보이는 땀방울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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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약왕>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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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약도 수출하면 그기 애국이지”…<마약왕> <마약왕>은 “수출역군”, “외화벌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고도 압축 성장기인 1970년대의 민낯을 한 마약업자의 일대기를 통해 그려낸 작품이다. 2015년 <내부자들>로 707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쓴 우민호 감독의 작품인 만큼 군데군데 “19금임”을 강조하는 인장이 새겨져 있다.
1970년대 부산. 시계나 귀금속 따위를 밀수하던 하급 밀수업자 이두삼(송강호)은 우연한 기회로 마약 밀수에 가담하게 된다. 뛰어난 사업 수완과 눈썰미, 고도의 처세술을 갖춘 그는 “대만에서 원료를 수입해 한국에서 제조하고 일본에 수출”하는 방식으로 단숨에 사업을 키운다. 그리고 사교계의 꽃이자 로비스트인 김정아(배두나)가 합류하게 되면서 이두삼은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를 호령하는 ‘세기의 마약업자’로 거듭난다. 부산에 부임한 검사 김인구(조정석)는 그런 그를 뒤쫓는다.
“뽕으로 쪽발이를 조진다”는 이두삼의 말로 압축되는 이 이야기의 뼈대는 그간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한국 영화에서 다루지 않았던 독특한 소재와 얼개다. 더구나 ‘박정희 1인 독재’가 키워낸,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는 성장 일변도의 사회 분위기는 “애국이 별건가? 마약도 수출하면 그기 애국”, “이 나라는 내가 먹여 살렸다 아이가”라는 이두삼의 대사와 찰떡처럼 들러붙는다. 영화 초반 이두삼이 밀수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고 나온 뒤 “전화 한 통 넣을 빽 없으면 이 나라에서 못 산다”는 깨달음을 얻는 장면 등 우민호 감독은 시대와의 밀착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장치도 적절히 심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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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약왕>의 한 장면.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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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완 좋은 가짜 사업가가 조직폭력배까지 끼고 온갖 로비를 통해 힘 있는 자와 결탁하고, 세파에 찌들지 않은 꼿꼿한 검사가 그 뒤를 쫓는다는 설정, 그리고 정치 지형의 변화와 함께 가짜 사업가의 시대도 저문다는 결말은 <범죄와의 전쟁> 등 이전 작품에서 흔히 봐온 전개다. 더불어 아무리 ‘청불’이라고는 하지만 중간중간 등장하는 잔혹한 장면과 벌거벗은 여성의 불필요한 전시는 다소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고픈 이야기가 다 끝났는데도 제대로 갈무리를 하지 못하는 듯 방황하는 느낌을 주는 결말 부분도 아쉽다. 슈베르트의 클래식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이두삼이 폭주하는 장면은 너무 길어 군더더기처럼 느껴진다. 139분의 러닝타임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국민 배우 송강호는 이전과는 또 다른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인다. <택시운전사>에서 눈물을 누르며 ‘제3한강교’를 부르던 만섭, <사도>에서 부정을 참아내며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던 영조로 대표되는 그간의 연기가 꾹꾹 눌러 담는 ‘절제미’로 수렴했다면, <마약왕>에서는 모든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폭발적 연기력으로 승부를 건다. 이두삼의 사촌동생 역으로 짧지만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김대명, 조강지처 성숙경으로 출연해 천연덕스러운 사투리 연기를 보여준 김소진 등 조연들의 원숙한 연기도 가점 요소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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