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22 21:26
수정 : 2019.05.2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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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에서 시골에서 상경해 서울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길남(김성찬), 덕배(안성기), 춘식(이영호, 위부터 시계방향)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세 친구가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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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한국영화 100년, 한국영화 100선
④바람 불어 좋은 날
감독 이장호(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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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에서 시골에서 상경해 서울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길남(김성찬), 덕배(안성기), 춘식(이영호, 위부터 시계방향)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세 친구가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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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개발 중인 서울 변두리, 중국집 배달부 덕배(안성기), 이발소 견습생 춘식(이영호), 여관 종업원 길남(김성찬) 세 친구는 시도 때도 없이 옥신각신하고 때론 싸우긴 해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절친들’이다. 시골 출신의 그들에겐 마음에 품은 여인들이 있다. 춘식은 이발사 미스 유(김보연)를, 길남은 미용사 진옥을 사랑한다. 덕배는 상류사회 병희(유지인)와, 춘식의 여동생인 여공 춘순(임예진)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장호 감독은 <별들의 고향>(1974)의 ‘벼락출세’ 뒤 대마초 파동에 연루돼 4년간 시련을 겪는다. 그 기간에 그는, 자신은 물론 시대를 깊고 폭넓게 성찰했고 조망한다. 그 결과물이, 최일남의 중편 소설 <우리들의 넝쿨>을 ‘충실히’ 재현한 5번째 연출작인 이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이다. 영화는 20여편의 전작(全作) 가운데 감독의 최고작으로 손색없다. 때론 <별들의 고향>이, 때론 <바보선언>(1983)이 우위를 점하곤 하나, 영화사적 의의에 오락·예술·미학·문화적 수준·영향력 등을 고려하면 그 어느 것도 이 걸작을 뛰어넘기는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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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변두리 개발지역에서 중국집 배달 일을 하는 덕배(안성기)와 공장에서 일하는 춘순(임예진)이 결국 서울을 떠나는 친구 길남을 배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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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前作)들을 관통하던 서민적 시선은 더 강렬해졌다. 멜로적 감성은 여전해도 감상성을 극복·지양했다. 전작들에서는 희미했던 사회 비판성까지 더해졌다. 다채로운 영화 스타일 시도에 블랙코미디적 기운마저 띠며 <바보선언>의 성취를 먼저 이뤘다. 그리고 극적 보편성이나 문제의식은 2019년 현재의 눈으로 봐도 유효하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이 ‘이장호 영화세계’의 새 출발이면서, 동시에 한국 영화 리얼리즘의 기념비적 개가요, 나아가 한국 영화사 전체의 어떤 변곡점인 이유다.
1960년대에 김기영의 <하녀>와 유현목의 <오발탄>이, 70년대에 이만희의 <삼포 가는 길>이 있다면 이제는 <바람 불어 좋은 날>이 존재하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의 한국 영화를 만개시키면서….
전찬일/영화평론가·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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