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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03 14:43 수정 : 2019.06.03 20:29

영화 <그녀>의 한 장면. ㈜더쿱 제공

청불→15세 등급조정 ‘그녀’ (Her)
AI와 인간의 로맨스 신선한 소재
상상력에 대한 포용성 확장 만영

영화 <그녀>의 한 장면. ㈜더쿱 제공
‘재개봉 영화,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뛰어난 작품성이나 시의성에도 불구하고 첫 개봉 당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영화들이 ‘새로운 홍보 전략’으로 재개봉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첫 개봉 때와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와 영화계 상황을 바탕으로 이번엔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영화 <그녀>(Her)는 지난 29일 ‘15세 관람가’ 등급으로 재개봉했다. 첫 개봉 당시인 2014년엔 ‘청소년 관람 불가’였지만, 재개봉을 하면서 관람 등급이 조정된 것이다.

<그녀>는 사랑의 상처 때문에 타인과의 소통을 두려워하는 손편지 대필 작가 ‘테오도르’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OS) ‘사만다’를 만나 진짜 사랑을 배우는 과정을 그려낸 독특한 감성의 로맨스 영화다.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각본상 등 전세계 영화제에서 83개 부문에 걸쳐 수상한 ‘수작’인데 인공지능 시스템과의 러브 스토리라는 파격적인 설정과 몇몇 선정적인 장면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판단에 따라 국내에선 ‘19금’ 딱지를 붙인 채 스크린에 걸린 바 있다.

이번 재개봉 등급 심사와 관련해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일부 선정성이 있지만 구체적이거나 지속적이지 않고, 인간관계 속의 외로움과 소통의 어려움, 사랑을 통한 관계의 회복을 다룬 내용 등을 고려해 2014년 개봉 버전에서 수정되거나 삭제된 부분 없이 15세 이상 관람가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5년 사이 영화적 상상력과 표현력, 다양성 측면에서 포용성이 더 커진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영화 <노리개>의 한 장면. 마운틴픽쳐스 제공
고 장자연 사건 모티브 ‘노리개’
관객들이 먼저 “다시 상영해달라”
오리지널에서 빠진 장면 10분 더

오는 5일 재개봉하는 영화 <노리개>는 최근 새롭게 조명을 받은 ‘고 장자연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2009년 신인 여배우가 술접대 및 성접대 강요를 폭로하며 자살한 이 사건이 검찰과거사위원회의 재조사로 10년 만에 대중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노리개>(2013)를 재개봉해달라”는 관객의 요구가 시작됐다. 과거사위가 ‘장자연 문건은 사실에 부합하지만, 리스트의 존재 여부는 진상 규명이 불가능하다’는 모호한 결론을 내놓으면서 대중의 공분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이 재개봉 요구에 더 불을 붙인 모양새다.

사실 <노리개>는 제작 당시에도 소재의 민감함 때문에 투자에 난항을 겪다 크라우드펀딩 등을 통해 어렵게 개봉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지 4년이나 지난 뒤의 개봉이라 16만900여명이라는 저조한 성적에 그쳤다.

한 여배우의 죽음에 관한 진실과 권력 뒤에 숨어 있는 가해자들의 추악한 민낯을 고발하는 과정을 법정 드라마 형식으로 담은 <노리개>는 이번에 <노리개: 그녀의 눈물>로 제목을 변경하고, 첫 개봉 때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약 10분 정도 추가 장면을 삽입했다. 제작사 관계자는 “(이번 재개봉은) 장자연씨의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분노와 진실을 향한 노력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관객들의 마음이 반영된 결과인 만큼 이 작품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의 한 장면. 엔케이컨텐츠 제공
홍보전략 수정한 ‘판의 미로…’
스페인 내전 폭압 다룬 잔혹동화
당시엔 가족판타지 ‘낚시질’ 비판

지난 5월2일 재개봉한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는 첫 개봉 때의 ‘홍보 전략 오류’를 바로잡은 경우다. ‘스페인 내전’의 폭압적 현실을 소녀 오필리아가 겪는 판타지와 교직해 은유와 상징적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기이하고 매혹적인 어른용 잔혹 동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명장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첫 국내 개봉 당시인 2006년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과 비슷한 ‘가족 판타지 영화’로 홍보의 방향을 잡아 ‘낚시 마케팅’이라는 비판과 야유를 받았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한국 관객 수준에 다소 어려운 영화라는 판단에 따라 홍보 전략을 당시 유행했던 판타지 시리즈와 유사하게 짠 것 같다”며 “개봉 초반엔 가족 관객이 들면서 성적이 괜찮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영화 속 잔인한 장면 때문에 항의를 많이 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홍보 전략을 수정한 <판의 미로>는 재개봉 첫 주말 다양성 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한 데 이어 개봉 3주차엔 2만명을 돌파하며 선전 중이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같은 영화라도 개봉 시점에 따라,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관객들의 이해도에 따라 관람 등급이나 홍보 전략, 흥행성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최근 이런 변화된 틈새를 공략해 재개봉하는 영화가 늘고 있는데, 놓쳤던 좋은 영화를 스크린에서 다시 볼 수 있다는 점, 영화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볼 수 있다는 점 등은 관객들에게도 반가운 일”이라고 짚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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