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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18 10:18 수정 : 2019.07.18 19:28

성수기 맞아 한국 텐트폴 영화 개봉

1년 중 최대 성수기라는 여름 시장을 앞두고 제작비 100억원 이상을 투입한 한국 텐트폴 영화(주력 영화)가 관객 사냥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올 상반기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시작으로 <알라딘>,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라이온킹>까지 디즈니 광풍이 몰아친 가운데 한국 영화가 여름 시장의 주도권을 쥘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이번 주 언론 시사를 통해 먼저 출사표를 던진 송강호·박해일 주연의 사극 <나랏말싸미>와 조정석·윤아 주연의 코믹액션 <엑시트>를 비교해 소개한다.

영화 <나랏말싸미>의 한 장면.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송강호·박해일 주연 <나랏말싸미>
고뇌·갈등하는 인간적인 세종대왕
한글 창제 조력자 신미스님 그려
시원한 재미보단 진중함에 초점
소현황후 역 고 전미선 배우 유작

이순신 장군과 함께 존경하는 역사적 위인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는 세종대왕. 영화 <나랏말싸미>(24일 개봉)는 ‘백성을 사랑하는 어질고 현명한 임금이자 한글 창제라는 위대한 과업을 남긴 군주’라는 그간의 박제된 세종의 이미지와는 달리 끝없이 고뇌하고 갈등하는 인간적 존재로 그려낸다. 영화 속 세종(송강호)은 왕권에 맞서 ‘유신들의 나라’를 세우려는 사대부들의 거센 견제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고, 역적 심온의 딸로 가문이 몰락한 아내 소현황후(전미선)를 마음 놓고 감싸주지 못해 슬퍼한다. 그가 유신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택한 방편은 ‘지식의 독점’을 깨트려 백성 누구나가 원하는 바를 읽고 쓸 수 있도록 하는 ‘쉬운 문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영화는 여기에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글 창제의 뒷 이야기’를 덧입힌다. 한글 창제의 뒤에는 집현전 학자들이 아닌 불교계, 그중에서도 신미(박해일)라는 스님의 결정적 도움이 있었다는 ‘야사’가 바로 그것이다.

영화 <나랏말싸미>의 한 장면.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나랏말싸미>엔 큰 사건이나 극적 갈등 구조가 없다. 세종과 신미가 힘을 합쳐 ‘쉬운 글’(언문)을 만드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숭유억불 정책’으로 대표되는 유신들의 반감이 전부다. 110분간의 플롯이 단조롭게 평면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 창제’라는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리고자 하지만, 설정의 참신함 만큼 이야기의 전개가 그다지 흥미롭지는 못하다.

배우들의 연기만이 온전한 볼거리다. 송강호는 특유의 유머러스하고 현대적인 사극톤 연기와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왕의 모습을 교차해가며 극의 중심축을 잘 잡아낸다. 언뜻 <사도> 속 ‘영조’의 모습이 겹쳐 보이지만, 극의 몰입을 해칠 정도는 아니다. 왕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하고 해박한 스님 신미를 연기하는 박해일은 딱 그의 몫만큼을 해낸다. 학조 스님 역을 맡은 신예 탕준상은 신스틸러라 할 만하다. 다만, 세종의 아내 소현황후의 역할이 두드러지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쉽다. 극 중 분량이 꽤 많음에도 이야기 전개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 고 전미선의 생전 마지막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 듯싶다.

결정적으로 이 작품이 ‘여름 텐트폴’로서 제격인지에 관한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볼거리와 재미라는 여름 성수기 영화의 공식에 대입하기엔 영화의 진중함과 무게감이 과하다. 아이들 교육용으로 추천하기엔 역사적 근거가 다소 빈약한 것이 약점이다.

영화 <엑시트>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CJENM) 제공
조정석·윤아 주연 ‘엑시트’
가스 테러 대재난 상황 탈출기
영웅·CG없는 현실적 긴장감 조성
리드미컬하고 찰진 코믹연기에
‘보통 사람의 평범한 선함’ 녹여내

영웅도 없다. 과도한 신파와 어색한 씨지(CG)도 없다. 하지만 시종일관 짠한 웃음과 빵 터지는 유쾌함이 흐른다. 영화 <엑시트>(31일 개봉)는 테러로 인한 유독가스가 뒤덮인 도심을 탈출하려는 청년 백수 용남(조정석)과 그의 대학동아리 후배 의주(윤아)의 이야기를 그린 재난탈출액션 영화다.

졸업 뒤 수년째 백수로 놀고 있는 백수 용남과 팍팍한 직장생활에 찌든 의주는 대학 산악부 동아리 선후배 관계다. 용남이 한때 짝사랑 했던 의주가 일하는 연회장에서 어머니(고두심)의 고희 축하연을 열게 되면서 둘이 재회하지만, 갑작스럽게 발생한 유독가스 테러로 온 도심은 아수라장이 된다. 건물 구석구석 번지는 유독가스를 피해 옥상으로 대피하려다 고립된 용남의 가족들과 의주. 대재난의 상황 속에서 둘은 산악부에서 갈고 닦은 ‘기술’을 이용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탈출을 도모한다.

영화 <엑시트>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CJENM) 제공
영화의 가장 큰 재미는 이 치열한 세상에서 하등 쓸모없어 모였던 용남과 의주의 ‘취미’가 생존을 위한 ‘특기’가 되는 반전이다. 분필을 으깨 손에 발라 마찰력을 줄이고, 건물 외벽의 벽돌과 간판을 이용해 클라이밍을 하는가 하면, 핸드폰의 손전등 기능을 이용해 구조신호를 보내고, 쓰레기봉투와 테이프를 이용해 방호복을 만드는 장면에선 웃음과 감탄이 동시에 쏟아진다. 때리고 부수는 비현실적 액션과 입이 떡 벌어지는 화려한 씨지(CG) 없이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쫄깃하고 현실적인 긴장감이 넘친다. 화려하진 않지만 맥가이버를 능가하는 이 가공할 현실 적응력을 보고 있노라면 대체 왜 용남이 백수라는 이유로 무시와 지탄을 받아야 하나 의문이 들 지경이다.

시종일관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용남과 의주의 코믹연기도 일품이다. 어딘지 궁상맞고 짠내 나는 현실 연기를 펼친 조정석은 물론 ‘예쁨’을 내려놓고 뛰고 달리며 망가지는 연기를 불사한 윤아는 엄지를 척 들어 올리게 만든다. 특히 둘이 찰떡궁합으로 주고받는 리드미컬하고 유머러스한 대사는 찰진 재미를 선사한다.

영화 <엑시트>의 한 장면. 씨제이이앤엠(CJENM) 제공
영화는 용남과 의주를 통해 대의를 지키는 영웅의 모습이 아닌 ‘보통사람의 평범한 선함’을 드러낸다. 두려움에 갈등하고 눈물지으면서도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구조의 기회를 양보하는 두 청년의 모습은 인간의 본성과 양심에 관한 작은 성찰마저 끌어낸다.

이 영화로 인해 몇 가지 부수적 효과들도 발생할 법하다. 건물 비상계단과 옥상 개폐를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불안감 조성은 부작용 중 하나일 테지만, 올여름 클라이밍 학원의 수요 창출과 흔한 백수도 다시 보게 되는 인식 전환의 긍정적 효과도 무시할 수 없겠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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