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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19 16:27 수정 : 2019.12.20 09:08

[서정민·남지은 기자+윤필립 평론가의 3인3색 리뷰]

웹툰 원작으로 한 청춘들의 소소한 인생 적응기 ‘시동’
“열심히 사는 당신을 위한 응원가”-“시동이 안 걸리네”

백두산 폭발 배경으로 한 남북 군인의 브로맨스 ‘백두산’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최고봉”-“재난 블록버스터의 전형”

대왕 세종과 관노 출신 과학자 장영실의 우정 ‘천문’
“역사성·시대성 살아있네”-“발연기 배우들 필람 영화”

겨울은 영화 시장의 가장 큰 대목이다. 국내 주요 투자·배급사들은 이 시즌을 겨냥해 간판 영화들을 내놓는다. 이번달 뉴(NEW)의 <시동>(18일 개봉), 씨제이엔터테인먼트의 <백두산>(19일 개봉),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천문: 하늘에 묻는다>(26일 개봉)가 관객을 맞는다. <한겨레> 문화팀 서정민·남지은 기자와 윤필립 평론가가 각 영화의 관전 포인트를 짚는다.

영화 <시동> 한 장면. 뉴 제공
■ <시동> 고교를 자퇴한 반항아 택일(박정민)과 상필(정해인)은 절친이다. 상필이 빨리 돈을 벌고 싶다며 사회로 뛰어들 때, 배구 선수 출신 엄마(염정아)의 강스파이크 따귀를 피해 집을 나온 택일은 무작정 군산으로 향한다. 우연히 들어간 중식당에 배달원으로 취직하면서 남다른 포스의 주방장 거석이(마동석) 형 등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조금산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서정민 원작 웹툰은 잔잔하면서도 어둡다. 영화는 원작의 잔잔한 분위기를 가져오되 좀 더 밝은 색채를 더했다. 초반에 택일과 상필의 캐릭터를 차곡차곡 쌓아가다 거석이 형이라는 예측 불가 초강력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흥미는 배가된다. 하지만 이후엔 택일의 고물 오토바이처럼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는다. 막판에 나름 커다란 한판이 벌어지지만 다소 싱겁게 마무리된다. 싱싱한 재료들로 인공감미료 없이 담백하게 만든 음식 같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 시동은 잘 걸었으나 달리다 만 느낌.

윤필립 서툰 청춘들의 인생 적응기라는 점에서 최정열 감독의 전작 <글로리데이>의 연장선에 있다. 전적으로 학생이기만을 강요받는 나이에 학생이 아니라 인생을 ‘택일’한 택일과 상필의 삶. 뭐든 시작하려면 직면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나 그들이 감당하고 살아내야 할 인생은 어찌 보면 다소 뻔하다. 그래선지 영화의 흐름 또한 큰 사건의 발생과 해결 과정을 펼쳐놓지 못한 채 밋밋하게 흘러간다. 다행히 이러한 밋밋함은 영화 전반에 넘치는 슬랩스틱 코미디로 어느 정도 극복되는데, 이는 전적으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낸 연기자들의 공으로 보인다. ★★★☆ 매 순간 열렬히 살아내고 있을 당신을 향한 응원가.

남지은 <극한직업> <엑시트>처럼 소소한 일상에서 유쾌한 공감을 줘야 승산이 있는데, 그러지 못했다. 박정민·마동석 등 주연은 물론이고 조연 배우들도 익숙한 이들로 채웠는데, 묶음으로 어우러지지 않는다. 박정민은 <타짜>의 연장선이고, 마동석은 ‘장르가 마동석’ 그 자체다. 겨울 영화 세편 중 내용으로는 가장 드라마가 있지만, 뭔가 관객을 당길 만한 포인트는 없다. 사건도 약하고, 사람 사는 냄새도 약하다. 원작의 ‘병맛’ 코드를 제대로 담지도 못했다. 드라마에서 해맑던 정해인은 나름대로 변신을 시도했지만 애매한 선에서 멈췄다. ★★ 시동이 잘 안 걸린다.

영화 <백두산> 한 장면.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 <백두산> 대한민국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백두산 폭발과 지진이 발생하자 한반도는 아비규환이 된다. 더 큰 추가 폭발이 예측된 가운데, 한국 정부는 지질학자 강봉래(마동석) 교수와 최악의 재난을 막을 계획을 세운다. 이에 따라 특전사 대위 조인창(하정우)이 북한에 침투해 작전의 키를 쥔 북한 무력부 소속 리준평(이병헌)을 만난다. 하지만 둘의 공조는 삐걱대기만 하고 폭발의 시간은 다가온다.

서정민 지진으로 서울 도심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재난 상황에서 조인창이 차를 운전해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오는 도입부 장면부터 제대로 몰입된다. <신과 함께>로 주가를 올린 덱스터스튜디오는 이 영화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부럽지 않은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이뤄냈다. 다만 이야기상에는 다소 빈틈도 보인다. 재난 블록버스터의 전형적인 공식을 따른다는 점은 관객들이 으레 기대하는 재미를 주나 신선한 맛은 덜하다. 한국영화의 오늘을 이끄는 두 배우 이병헌과 하정우의 ‘케미’와 매끄러운 강약 조절이 빛난다. ★★★★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최고봉.

윤필립 스펙터클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목적을 영리하게 충족시킨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구조 위에 전형적인 일파만파 점입가경의 공식으로 만들어진 시나리오는 각 단계로 이어질 때마다 볼거리를 하나씩 터뜨림으로써 관객이 지루해할 위기를 영악하게 비껴간다. 작정한 듯 기획한 시나리오는 태생적으로 클리셰적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놀라운 시각효과 기술과 배우들의 조화로운 연기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하다. ★★★★ 영악한 시나리오, 영리한 연출, 명민한 연기!

남지은 영화 속 또 하나의 ‘배우’인 컴퓨터그래픽은 한국영화 기술이 어디까지 도달했는지 확인시킨다. 강남역이 무너지고, 잠수교에 쓰나미가 몰려오다니. 너무 힘을 줘 오히려 인공적으로 느껴질 정도. 이병헌도 잘하지만 하정우 특유의 힘을 뺀 능청스러운 연기가 ‘백두산’과 함께 폭발한다. 그간 여러 작품에서 상대 배우를 압도해왔던 이병헌에게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재난+북한’ 소재 영화의 클리셰를 뛰어넘지는 못한다. 남북 남자들의 우정, 가족을 위한 희생 등 전형적인 내용에 결말도 예측 가능하다. ★★★★ 재난+북한’ 소재를 잘 섞었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천문: 하늘에 묻는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일컬어지는 세종(한석규)과 관노로 태어나 종3품 대호군이 된 천재 과학자 장영실(최민식)의 이야기.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신분 격차를 뛰어넘어 20년간 꿈을 함께하며 위대한 업적을 이뤄낸 둘이지만, 왕이 타는 가마 ‘안여’가 부서지는 사건으로 장영실은 하루아침에 내침을 당한다. 조선의 시간과 하늘을 만들고자 했던 둘 사이에 숨겨진 이야기가 밝혀진다.

서정민 기록을 보면 장영실이 안여 사고로 문책을 받아 곤장 80대 형을 받은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후 장영실에 대한 기록은 없다. 여기서 출발해 상상력을 발휘했다는 점이 기발하다. 세종과 장영실은 ‘멜로 장인’ 허진호 감독의 손을 거쳐 조선판 브로맨스 커플로 재해석된다. 오랫동안 한국영화의 중심축 구실을 해온 두 배우 한석규와 최민식은 목소리 톤과 눈빛만으로도 절절한 감정을 표현한다. 조선의 국운이 얽힌 거대한 이야기로 확장해나가는 후반부에선 묵직한 힘이 느껴진다. 다만 영화 전반에 걸친 무게감을 버거워할 관객도 있겠다. ★★★☆ 연기 보는 재미만으로도 본전 생각은 저 멀리.

윤필립 왕과 신하의 끈끈한 우정이라는 ‘발칙한 상상’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마치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자 진실인 듯한 핍진성을 가진다. 결과적으로는 조선판 버디 무비의 결을 나타낸달까? 두 캐릭터 사이에 형성되는 우정의 조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점차 균형감을 상실하기도 하는데, 이는 ‘멜로드라마’에서 흔히 나타나는 감정 과잉으로 인한 피로감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좋은 이야기는 정서 표현에 성실하고 진실한 법. 바로 이것이 허진호 감독의 장점이자 강점이 아니던가! ★★★ 정치적 이슈에서만은 시대성·역사성이 제대로인 영화.

남지은 한석규와 최민식을 한 화면에서 보는 것만으로 몰입된다. 연기를 어쩌면 이렇게 잘하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석규는 목소리만으로도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고, 최민식은 <명량>의 ‘장군’ 이순신에서 ‘관노’ 장영실로 완벽하게 변신한다. 멀뚱멀뚱 쳐다보는 표정에선 예상 못 한 순수함이 묻어난다. 드라마 <서울의 달>, 영화 <넘버3> <쉬리>에 이어 다시 만난 두 배우의 호흡은 절정에 이르렀다. 함께 누워 별 보는 장면이 왜 흐뭇하지? 하지만 ‘연기 장인’들의 연기가 다인 것은 아쉽다. 이야기가 섬세하지 않고 굵직한 사건 위주로 흐르다 보니, 보고 나면 내용이 남지 않는다. ★★★ ‘발연기’ 일삼는 배우들의 필람 영화.

서정민 남지은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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