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7.13 19:26
수정 : 2005.07.20 18:18
노승림의무대X파일 - 링컨 대통령 암살한 존 부스
18세기 말, 공연예술은 급작스러울 만큼 자극적인 강도를 더해갔다. 그리하여 멜로드라마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화재, 지진, 홍수, 폭발, 살인과 관련된 각종 사건들이 실랄하게 무대 위에서 벌어졌고 관객들은 그런 무대를 보며 웃음과 눈물, 공포심을 번갈아가며 즐길 수 있었다.
미국 연극계는 이러한 풍조가 더욱 심했다. 그러던 1865년 4월14일. 가장 리얼하고 충격적이며 온 미국 시민들이 경악할 사건이 워싱턴 포드 극장에서 연출되었다. 당시 무대 위에서 상연되고 있었던 작품은 <우리의 미국인 친척>. 주역은 당시 미국 최고의 성격배우로 평가받던 명배우 에드윈 부스가 맡고 있었다.
에드윈 부스의 집안은 대대로 연극배우 가문이었다. 아버지 제니우스 브루투스 부스는 당대 미국 전역을 주름잡던 명배우였으며 같은 세대인 형제 주니어스와, 존 또한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공연할 때에는 삼형제가 한꺼번에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들 형제는 모두 비극 전문 배우로 각광을 받고 있었지만 실제로도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었으니,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정신병력 때문이었다. 아버지 제니우스 또한 정신분열증으로 삶을 마감하였으며 에드윈의 둘째 부인은 중증의 정신이상자였고, 에드윈 형제들은 모두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막내 존 부스는 그 증상이 심각했다.
존 부스의 우울증은 형과 아버지의 명성을 쫓아가지 못하는 자격지심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바에서 만난 친구에게서 “너는 결코 아버지 같은 유명한 배우가 될 수 없을 거야”라는 조롱을 받았다. 이 때 부스는 화를 내는 대신 조용히 웃으며 이렇게 응수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무대를 떠날 때, 나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바에서 친구와 헤어진 후, 그는 형이 한참 공연 중인 워싱턴 포드 극장에 찾아 왔다. 형을 만나러 왔으리라 생각한 극장 스태프는 아무런 경계 없이 그를 극장 안으로 들여놓았다. 공연이 한참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던 이날 밤, 그러나 충격적인 장면은 무대 위가 아닌 극장 특별석에서 벌어졌다. 한 발의 총성이 들려왔다. 에드윈 부스가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동안 동생 존 부스는 특별석으로 몰래 잠입해 그 자리에 앉아 있던 형의 팬 한 명을 총으로 쏴 죽였다. 그 희생자의 이름은 다름아닌 16대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었다.
노승림 공연 칼럼니스트/성남문화재단 홍보부 과장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