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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0 16:36 수정 : 2005.07.20 17:06

무대위아래사람들

‘백설공주…’·‘에쿠스’ 등 작곡
“가끔 CF하지만 무대가 좋아”

어떤 공연이든 줄거리, 연출 의도 따위 공연 기본 정보를 담아 기자에게 건네지는 보도자료가 있다. 무용 쪽이 기자를 가장 아찔하게 한다고 그에게 먼저 토로했다.

줄거리나 의도가 그냥 ‘길을 걷는다’ ‘나는 과연…’ 식이다. 현상학자 후설이나 메를로 퐁티의 말보다 어렵다. 그래서 어쨌는데? 혼미해진다. 다시 기본 정보부터 직접 취재를 하거나 기사 쓰길 그만둔다.

김태근씨가 이해한다, 안쓰럽다는 듯 웃는다. 그도 작업을 하기 전 연극의 대본, 무용 작품의 안무 의도 따위를 자료로 건네받는다. 따져보니 기자가 난감할수록 그는 좋단다.

“그냥 ‘길을 걷는다’가 좋아요. 비가 추적추적 오는 어두운 밤 아스팔트를 걷고 있는데…라고 말해보세요. 그냥 음악을 (효과음처럼) 입히는 거밖에 안돼요. 그걸 벗어나야 제 음악이 자유롭고, 작품과 이야기할 수 있는 여지가 더 커집니다.”

‘무대 음악가’ 김태근. 무용, 연극 작품 등의 음악을 맡는다. 나이는 서른넷인데, 경력은 어느새 14년째. 중앙대 작곡과 2학년 때부터 작업을 했다.

사실 적잖은 기간 그는 그저 김벌레씨의 아들이었다. 유명 콜라회사의 상업광고에서 병뚜껑을 딸 때 ‘페엡~시’ 소리가 나게 했다는, 한국 최고의 음향 전문가. 일본쪽이 실패한 뒤 결국 그가 만들어 세계적 광고로 쓰이고, 백지수표를 받았다는.

“부담 많이 됐죠. 워낙 유명한 분이라. 다행히 분야가 달랐기 망정이지. 대학로에서 작업할 땐 음악감독이 음향도 함께 맡는 경우가 많았는데, 전 빨리 적응했어요. 외려 아버지 덕분이었어요.”


아버지 덕은 또 있다. 고등학생일 때 아버지의 스튜디오에서 더빙, 효과음 작업이 많았다. 김씨는 그 자리에서 시에프 그림에 맞는 배경음악을 작곡하곤 했다. 우연치 않게 반영된 작품만도 200여 편. 음악은 그렇게 다져졌다.

이제 ‘누구’의 ‘무엇’보다 연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에쿠스>, 무용 <달 보는 개> 등의 작곡가, 음악감독으로 더 유명함은 물론이다.

“92년 소개로 황미숙씨(올해 서울무용제에서 대상을 받았다)의 무용작품 음악을 맡았어요. 처음이었죠. 음악에 의해 전혀 다른 춤이 나오고, 춤에 의해 음악이 다르게 들리더라고요. 음악이 정말 살아있다고 생각됐죠.”

지금까지 400여 편의 무대작품에서 그의 ‘음악은 살아있다’.

요즘 김성녀의 모노 드라마 <벽 속의 요정> 음악이 사람들을 울리고 있다고 말해줬다. 김철환씨의 작품이다. 지난해 1년 동안 김태근씨 아래에서 견습했다. 국내 무대 음악가들은 10여 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이름을 얻으면 영화 쪽으로 진출한다.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해요. 전 음악을 입히는 일은 원없이 해봤어요. 무대가 좋습니다. 돈 때문에 아직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시에프 음악을 합니다만, 마음놓고 연극, 무용일을 하기 위해서예요. 일이 많을 땐 바로 포기하는 게 시에프입니다.”

지금 손을 대고 있는 작품만도 9개. 매달 그의 작품이 4개 정도 무대에 오른다. 그의 작품이 무단으로 쓰이는 곳까지 합치면 더 많다.

“저도 모르는 곳에서 네 음악 잘 들었다는 연락이 와요. 좀 웃겨요.” 열 작품 가운데 하나 정도 대가를 못 받는 것보다 더 우울한 현실이다.

“작업 초기, 네 음악 죽인다, 하는 얘기 듣고 우쭐했어요. 이젠 칭찬이 아닌 걸 알아요. 무대 음악은 땅이거든요. 그 위에 뭔가가 서있게 하는 거예요. 음악이 퍼포먼스를 앞지르면 안 되는데 땅이 험준한 산이나 굴곡이 돼버리면 그 위에서 뭘 할 수 있겠어요. 그 전제에서 더 나은 창작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합니다.”

사진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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