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나가사키의 추억’ 극단 도우케 대표 시노자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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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피폭자의 삶 그려 전후책임 화두 던지고파”
“난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에서 가장 가까운 중학교에 다녔다. 기독교 신자가 많은 지역이다. 교회도 많았다. 그때 교회 종이 하루에 3번씩 울렸다. 아침 6시, 점심 12시, 저녁 6시. 아이들은 교회의 종에 맞춰 생활하고 있었다. 예외가 있었다. 장례식, 결혼식, 그리고 8월9일 11시2분이었다.” 연극인 시노자키 신고(47). 60년 전 8월9일의 나가사키는 그렇게 각인됐다. 기억은 그의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원래 고쿠라 병참기지를 노렸던 두 번째 원자폭탄은 악천후 때문에 나가사키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그 곳을 괴멸시켰다. 전쟁은 무작위다. 일본 극단 도우케의 <나가사키의 추억(Nagasaki in Graffiti)>은 그때와 관련한다. 주인공은 60만 명의 일본인 원폭 희생자(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지역)가 아니다. 그 가운데 10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 희생자의 불행한 삶을 작품은 이야기한다. 시노자키는 2002년 <나가사키의 추억>을 구상하고 작품화한 극단 도우케의 대표다. 이달 중순 서울 공연에 맞춰 함께 입국할 그를 전자우편으로 먼저 만났다. 왜 한인 피폭자인가= 주변에 2세를 포함한 피폭 희생자가 많다. 하지만 한국에 피폭자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1995년 후쿠오카의 한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당한 11살 한국인 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올렸었다. 그때부터 한국인들과 교류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8월6일, 9일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있었던 한국인들이 그들의 나라로 돌아간 뒤 어떻게 됐을까? 전후 세대끼리 만드는데= ‘한국인 피폭자’란 주제를 전후세대끼리 풀어보자고 결정했다. 우리 세대들의 전후 책임에 대해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가, 배우, 연출가 모두 전후세대 일본인이다. 왜 전후세대인가= 1956년 “이제 전후가 아니다”라는 정부의 선언에 기뻐하는 부모들 밑에서 우린 자랐다. <전쟁을 모르는 아이들>이라는 유행가를 흥얼거리면서 자랐다. 그 결과가 뭔가. 이웃 나라에서 전쟁 책임을 묻고 요구하더라도 대답할 능력이 거의 없어져 버렸다. 이걸 본 청소년들이 예전의 나처럼 말한다. “한국에 피폭자가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실력이 형편없는 나가사키 어느 중학교의 축구부 아이들이 축구를 아주 잘하는 한국인 소년과 만나면서 이야기는 깊어진다. 초연 때 한일월드컵이 한창이라 축구를 하나의 열쇠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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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준비했나= 한국인 피폭자의 글을 많이 읽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왜 있었는지, 그때 도시는 어땠는지, 왜 한국으로 돌아갔는지, 따위 이야기는 많았다. 그러나 그 이후 얘기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부산과 서울, 합천의 요양시설을 찾아갔다. 50명(2세 포함)을 넘게 만났다. 그들은 나가사키, 히로시마를 또 하나의 고향처럼 말하고 있었다. 나처럼 말이다. 이건 그들의 고향, 나가사키의 기억이다. 지금도 전쟁은 일어나고 있다= 한일의 피폭자들은 또 다른 ‘자신들’이 다시는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평화를 위한) 보복 전쟁인가? 피폭자들은 그리 보지 않는다. 보복에서 평화가 피어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피폭 국가, 일본이 왜 이런 것을 반대하지 않는지 난 이해할 수 없다. 아직도 핵무기가 있다. 극단 도우케는 올해로 창단 40돌을 맞는 지방(규슈) 극단이다. 올 1월 화재를 입었다. 규슈 주민들이 다시 살렸다. 불 난 지 5시간 만에 ‘도우케 구제 대책본부’를 세워 모금활동을 펼친 것이다. 일본말로 걸어오는 ‘짝퉁’ 상인, <겨울연가>가 싫고 대학로와 그 곳 젊은이, 박지성을 좋아한다는 시노자키는 한국을 20여 차례 방문한 연극계의 대표적 지한파다. 시노자키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 “사회적인 주제를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연극의 몫이란 말도 덧붙인다. 그는 “양국의 고등학생이 함께 핵무기 폐기를 위한 서명 운동을 하는 모습에서 미래를 느낀다.” <나가사키의 추억>은 제17회 거창국제연극제에서 11~12일 먼저 만난다. 이어 14~15일 서울 대학로의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무대에 오른다. 거창에선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이 단체로 관람하기로 돼있다. 15일 연극이 끝난 뒤에는 나가사키, 히로시마의 전 시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과거를 교훈 삼아, 평화로운 미래를 꿈꾸며’란 제목의 한일 평화포럼이 열린다. (02)762-2675.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사진 극단 도우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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