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다음악감독-박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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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위아래사람들
“그건 아냐.” “그 부분 다시 해봅시다.” “다시 한번만 더!” 지난 9일 서울 역삼동 엘지아트센터 리허설룸에서 훤칠한 체구의 긴 머리 여성이 11인조 밴드를 다그치고 있다. 고개를 쑥 내밀고 귀를 쫑긋 세운 채로 지휘를 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다 싶으면 고개를 흔든다. 또다시 영락없이 “다시!”. 얼핏 보기에도 이국적인 외모와 카리스마 넘치는 이 여성. 뮤지컬 음악감독 국내 1호 박칼린(38)씨. 그는 지난 10년간 <명성황후>를 비롯해 <오페라의 유령> <사운드 오브 뮤직> <페임> <렌트> <시카고> <미녀와 야수> <노틀담의 꼽추> 등 국내 뮤지컬사에 획을 긋는 작품들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음악이 공연의 흥행 여부를 결정짓다시피하는 뮤지컬 장르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무대 뒤에서 한국 뮤지컬계를 떡 주무르듯이 한 셈이다. 그는 요즘 오는 26일부터 여덟달간 장기공연될 뮤지컬 <아이다>의 음악감독을 맡아 마무리 음악작업에 매달려 있다. “음악감독은 작품이 선정되는 그 순간부터 무대 막이 내릴 때까지 공연현장을 떠날 수 없어요. 음악을 창작하거나 선곡하고 편곡하는 작업부터 스태프 구성, 배우 캐스팅과 노래연습까지 참가해야 합니다. 따로 밴드도 연습시키고 지휘도 해야죠. 한마디로 만능 엔터테이너여야 합니다.” 음악분야가 세분화되어 있는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와 달리 유독 한국에서 음악감독이 1인다역이 되어버린 까닭은 뮤지컬 음악감독 국내 1호로써 그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음악감독의 매력을 “생명력을 느끼는 라이브 무대의 중심에 선다는 데”서 찾는다. “항상 긴장하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죠.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호흡해 한 작품을 이룰 때의 그 성취감, 그런 매력 때문에 버티는 것이 아닐까요.”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캘리포니아 예술대에서 종합음악과를, 서울대 대학원에서 국악작곡과를 전공한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9살 나이에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한 초등학교에서 배우와 첼로 연주자로 첫 무대에 선 뒤로 10년간 배우생활을 보내고 95년 국내에 <명성황후>로 음악감독에 데뷔했다. 그동안 50여편에 이르는 크고 작은 뮤지컬 작품에 손대면서 이제 그의 이름은 인기 연출가나 배우만큼 작품의 보증수표로 평가받는다. 그는 국내 뮤지컬을 장악하고 있는 여성 음악감독의 대모이기도 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카르멘> <달고나>의 구소영씨, <맘마미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김문정씨 등 젊은 뮤지컬 음악감독들이 그를 거쳐갔고, 현재 <뱃보이>의 김미숙, <더 싱 어바웃 맨>의 서유진, <어세션>의 김령희 등이 그의 밑에서 수련을 받고 있다. 그는 음악감독을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음악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배워서 오라”고 주문한다. 또 “엄청나게 넓은 마음과 체력, 독하면서 유연한 생각, 리더쉽과 카리스마를 갖춰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정말 뮤지컬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한다. 요즘 그는 대본과 노래 가사 등 글 쓰는 일에 더 재미를 붙였다. 지난해 뮤지컬 <구미호>와 <떴다 영이>의 대본을 완성해 내년쯤에 공연을 기다리고 있고 뮤지컬에 관한 책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케이블 방송 <아리랑 티비>의 진행자로, 지난 3월부터 동아방송대학에서 뮤지컬과 교수도 맡은 그에게 머잖아 첫 뮤지컬 음악감독 겸 연출가, 작사가, 대본가라는 꼬리표가 더 붙을지도 모른다. 그는 끝없이 도전하고 있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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