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밤 홍대앞 라이브클럽 롤링스톤즈에서 밴드 ‘오!부라더스’ 가 관객들과 어울려 연주를 하고 있다. 탁기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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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 인디밴드의 모든것
인디밴드들의 아랫도리를 벗기다! 지난 5일 밤 서울 홍대앞 라이브클럽가를 찾았다. 최근 카우치의 생방송 알몸 노출 사건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디밴드들의 실체를 벗기기 위해서다. 이날은 매달 첫번째 금요일 저녁마다 열리는 ‘라이브클럽페스트’가 있는 날. 20여 개의 인디밴드들이 네 군데 라이브클럽 무대에서 잇따라 공연을 벌이고 있었다. 상업성 올가미 판박이 음악 싫어
1990년대 중반 젊은이들 펑크 음악으로 혈기 분출
2000년이후 열풍 사그라들고 댄스클럽에 밀려 고전
전성기여 다시 한번… 처음 찾아간 곳은 ‘긱 라이브하우스’. 20대 초반의 앳된 여성 4명으로 이뤄진 펑크밴드 쇼티캣의 깜찍하면서도 활기 넘치는 공연이 펼쳐진다. 이들은 럭스와 카우치가 소속된 스컹크 레이블 소속 밴드다. ‘이런 펑크밴드도 있네~!’ 이어 무대에 오른 밴드는 킹스톤 루디스카. 색소폰·트럼펫·트롬본 등 4명의 브라스 연주자가 전면에 선 이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자메이카에서 탄생한 ‘스카’다. 연주하는 모습은 사뭇 진지하지만, 쿵짝거리는 브라스 소리에 어깨가 절로 들썩인다. 옆에 자리잡은 ‘롤링 스톤즈’에 발을 들여놓으니 타임머신을 타고 1960년대로 날아온 듯한 느낌이다. 비틀즈를 연상시키는 복고풍 차림에 엘비스 프레슬리 풍의 로큰롤 사운드가 흥겹게 울려퍼진다. 만화에서나 나옴직한 모습으로 신나게 연주하는 밴드 ‘오! 부라더스’의 음악에 맞춰 사람들은 발바닥을 부비며 트위스트를 춘다. 이들은 지난달 말 세계적인 규모의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에 한국을 대표하는 밴드로 참가하기도 했다. 이처럼 인디밴드라는 겉옷 안에 숨겨진 이들 각자의 속살은 뭐라 한 마디로 재단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모습과 끼와 개성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카우치는 인디밴드라는 몸뚱아리 속 수많은 실핏줄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인디가 뭐야?
인디펜던트(독립적인)의 줄임말 ‘인디’는 원래 거대 자본·매체로부터 독립된 제작 시스템을 뜻하는데, 존재 방식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미국에서는 적은 규모의 독자적인 자본으로 운영되는 레이블(음반제작사 상표)을 두고 인디라 하고, 영국에서는 지방(로컬) 레이블을 인디라고 부른다. 이 개념이 일본으로 넘어오면서 ‘독립성’을 강조하는 정신이 됐다. 그렇다면 국내에선 어떨까? 문화평론가이자 인디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리더인 성기완씨는 “국내에선 소규모 자본으로서의 인디와 정신으로서의 인디가 혼합된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며 “결국 얼마든지 다양한 방식과 형태의 인디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음악평론가 박준흠씨는 “인디판은 오버그라운드로 가기 위한 대기소가 아니라 뮤지션이 자신의 음악적 진정성을 훼손되지 않은 채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메이저 음반사 대신 선택한 공간”이라며 “인디의 범주를 따지기보다는 왜 이들이 그곳을 택했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디는 뮤지션이 스스로 선택한 음반 제작 방식인 동시에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철학 자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인디는 언제부터? 국내에 인디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한 건 홍대앞을 중심으로 인디레이블과 인디밴드가 생기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이다. 펑크를 통해 욕구를 분출하는 젊은이들이 나타났는데, 이들은 우상으로 여기는 유명 밴드의 곡을 그대로 따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작곡을 연주했다. 라이브클럽은 이들의 훌륭한 멍석이 됐고, 드럭 등 일부 라이브클럽들은 스스로 인디레이블을 만들어 앨범을 내기도 했다. 이후 카바레·레이블인디 등 인디레이블들이 잇따라 생겨났다.
인디 너를 해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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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밴드가 활성화될 수 있었던 또다른 축은 피시통신이다. 피시통신 내에 수많은 음악동호회가 생겼고, 여기서 활동하던 이들이 직접 밴드를 꾸리고 나선 경우도 꽤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모던록밴드 언니네이발관과 델리스파이스다. 이들이 낸 앨범은 피시통신을 통해 입소문을 타고 번져나갔다. 인디의 오늘과 내일? 오늘날 인디판을 두고 예전만 못하다는 이들이 많다. 홍대앞을 중심으로 400개 안팎의 밴드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공동체 의식이 짙었던 초창기와 달리 밴드들이 지극히 세분화·개인화됐다는 것이다. 창작과 연습을 소홀히 하는 등 역량이 부족한 밴드들도 많다고 입을 모은다. 90년대 후반까지 경쟁적으로 관심을 보이던 언론과 대중이 이내 실망과 싫증을 느끼며 한꺼번에 빠지면서 분위기가 침체됐는가 하면, 라이브클럽은 2000년 이후 홍대앞을 점령한 댄스클럽들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인디판에 거는 희망은 여전하다. ‘오! 부라더스’의 리더이자 인디레이블 카바레사운드 대표인 이성문씨는 “얼핏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은 90년대 후반에 비해 지금은 침체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인디판은 꾸준한 성장곡선을 그려왔다”며 “메이저가 하기 어려운 다양한 음악적 실험들을 인디가 과감히 시도해 결과가 좋으면 이를 메이저가 받아들이고, 인디 또한 메이저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는 순환적인 구조가 국내 대중음악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준흠씨는 “인디의 존재 의미를 개개인의 다양한 음악적 취향을 만족시켜주는 차원을 넘어 산업적인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편협한 다수가 전체를 휩쓸기보다는 다양한 소수가 촘촘히 박혀있는 구조야말로 문화산업의 양적·질적 성장을 이뤄내기 위한 필수 조건인데, 인디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날로 위축되는 대중음악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인디판은 반드시 성장세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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