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9.07 17:31 수정 : 2005.09.08 13:59

길가던 3살 꼬마 성큼성큼 다가가 맨앞에 앉더니 20분 삼매경에 빠지다-‘콰르텟엑스’ 평톤역 연주회

100르포 - 3살 꼬마 성큼성큼 다가가 맨앞에 앉더니 20분 삼매경에 빠지다


 지난 3일 오후 5시 지하철 4호선 평촌역 지하 1층 광장. 어디선가 지하철의 요란한 굉음소리와 사람들의 소음을 뚫고 잔잔한 클래식 선율이 들려왔다.

그러자 분주하던 사람들의 발길이 뚝 멈춰지면서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어느 한곳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마치 사진처럼 검은 연미복을 차려입은 연주자 4명이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를 연주하고 있었다.

콰르텟 엑스(QUARTET X). 정통클래식과 대중음악을 넘나들며 실험적인 현악사중주 연주를 개척해온 클래식 음악계의 이단자들이다.

이 파격적인 무대는 2년째 지하철역에서 ‘스테이션’이라는 이름의 연주회를 진행해오던 이들이 최근 데뷔앨범 <샤콘느>에 이어 두번째 음반을 준비하면서 지하철역에서 생생한 현장연주를 라이브앨범으로 꾸미기 위해 마련했다.

이렇게 편안한줄 몰랐어요

시끄러운 지하철역 공간과는 전혀 어울릴 것같지 않던 <죽음과 소녀>의 전 4악장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클래식은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정말 좋아요. 친구와 다퉈서 화가 났었는데 클래식 음악을 들으니까 마음이 편해졌어요.”


길가던 3살 꼬마 성큼성큼 다가가 맨앞에 앉더니 20분 삼매경에 빠지다-‘콰르텟엑스’ 평톤역 연주회
멀찌감치 떨어져 계단에 앉아 음악을 감상하던 김연심(26·회사원·안양시 평촌동)씨는 “클래식 음악이 어려운 것으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편안한 줄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지하철을 타러 왔다 끝까지 연주회를 지켜보던 이혜옥(52·주부·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씨는 “평소 클래식을 즐겨 듣는 편인데 열린 공간에서 들으니 색다른 맛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서양의 살롱 연주회처럼 연주자들이 관객과 같은 높이에서 들려주는 연주를 즐길 수 있어서 더 좋았다”고 말했다.

이날 연주회는 오히려 꼬마 청중들에게 더 인기를 끌었다. 클래식 연주회장이 많지 않은데다 초등학생 이상만 출입할 수 있는 제약 때문에 연주회 경험이 거의 없던 어린이들의 눈에 신기하게 비쳤던 모양이다. 탁서연(3)은 연주회가 시작되자마자 무대 맨 앞으로 걸어가 주저앉더니 이내 삼매경에 빠졌다. 덕분에 애꿎은 엄마 아빠는 연주회가 끝날 때까지 클래식 음악을 감상해야 했다.

“아이가 저렇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할 줄 몰랐네요. 저 또한 평소 티켓 값이 만만치 않은데다 그런 여유도 없어서 연주회에 자주 못 가는 편인데 이렇게 열린 공간에서 자유롭게 음악을 즐길 수 있어서 기분 좋습니다.”

아빠 탁인(34·안양시 평촌동)씨는 “서연이가 금방 일어날 줄 알았는데 20분 동안이나 저러고 앉아있다.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용감하고 적극적인 것같다”고 놀라워했다.

콰르텟 엑스의 리더이자 제1바이올린을 맡고있는 조윤범(30)씨는 “음악을 모르는 시민들이 지나가다 듣고 끝까지 진지하게 연주를 감상하는 모습에 감동을 많이 받았다”면서 “그 분들이 악장 중간에 치는 박수소리마저 정겹게 들렸다”고 말했다. 첼리스트 오새란(25)씨도 “관객들과 만나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이지만, ‘스테이션 연주회’에서는 순간적인 반응을 즉시에 알 수 있기 때문에 훨씬더 생동감과 보람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오후 2시와 5시, 8시 등 세차례 연주회에서 콰르텟 엑스는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35분)를 비롯해 차이코프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6분), 자신들이 ‘지하철’(Subway)이라고 이름붙인 하이든의 <현악사중주 작품번호 76-5>의 4악장(4분),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9번 ‘라주모프스키 3번’>의 4악장(6분)을 들려주었다. 그러나 관객들의 앙코르가 빗발쳐 영화 <여인의 향기>와 <씨네마 천국>의 테마곡, <올드보이>의 ‘미도의 테마’ 등 3~4곡을 더 들려주어야만 했다.

연주자도 “감동 받았어요”

“출·퇴근하는 공간으로만 여겨졌던 지하철역 광장이 이렇게 근사한 문화공간으로 바뀌다니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것같아요.”

길가던 3살 꼬마 성큼성큼 다가가 맨앞에 앉더니 20분 삼매경에 빠지다-‘콰르텟엑스’ 평톤역 연주회


연주회가 끝나자 콰르텟 엑스의 데뷔앨범 <사콘느> 시디 3장을 뽑아든 백남일(50·상업·안양시 평촌동 초원마을 대원아파트)씨는 “연주회 취지가 좋고 연주실력도 뛰어나 친구들에게 꼭 선물하겠다”며 이 신세대 연주단체에 힘을 실어보냈다.

현재 조윤범씨와 오새란씨, 제2바이올린 김경연(25)씨, 비올라 김치국(28)씨가 참여하고 있는 콰르텟엑스는 2000년 4월 결성된 뒤로 도전적인 레퍼토리, 강렬한 사운드와 무대매너 등이 특징인 신세대 연주단체. 특히 2002년 9월 ‘거친 바람 성난 파도’, 2003년 11월 리틀앤젤스센터에서의 앙코르공연, 엘가마스터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연주회 ‘익스트림 체임버나이트’ 등 파격적인 실내악 연주회를 선보이며 젊은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해 6월12일에는 광화문 사거리 촛불광장에서 열린 ‘여중생 장갑차 사고 2주기 추모연주회’에서는 효순과 미선의 넋을 위로하는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연주로 화제를 모았다.

이들은 또 클래식을 연주홀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지하철 7호선 논현역에서 ‘스테이션’이라는 지하철콘서트를 2년째 벌이고 있다. 조윤범씨는 “모차르트 탄생 250돌을 맞는 내년에는 1월부터 12월까지 서울의 지하철 1~8호선과 부산, 대구, 광주, 인천의 지하철역 내에서 모차르트의 <현악사중주> 전곡 26곡을 연주하는 ‘지하철을 탄 모차르트’ 연주회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클래식 음악은 소수를 위한 고급예술에 머무르게 해서는 안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최상열(50·글로썬 레코딩 스튜디오 대표)씨가 녹음한 평촌역 지하철 연주회는 10월 초에 콰르텟 엑스의 두번째 정규음반으로 출반될 예정이며, 홈페이지(www.quartet-x.com)에도 공개할 계획이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