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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빠지면 못헤어나는 ‘거미줄 음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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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빠지면 못헤어나는 ‘거미줄 음색’
거미(박지연·24)의 목소리는 마음을 울린다. 세 번째 앨범 <포 더 블룸>의 타이틀 곡 ‘아니’.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이별 노래다. 노랫말도 직설적이다. 그런데 곡이 끝날 때쯤 울컥하게 된다. 음의 높낮이와 강약을 격정적으로 오가며 감정을 휘젓는 목소리의 힘 때문이다. “슬프면 슬픈대로 절규했죠”
장르 넓혀 대중에 더 가까이
작사·작곡에 랩도 뽐내 “절제해야 더 슬프다고 흔히 말하죠. 저는 그게 안 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슬프면 슬픈 대로 미안하면 미안한 대로 부를 수밖에요. 그냥 절규하게 돼요.” 자기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여야 대중의 감정 자락에도 닿을 수 있단다. 그는 그렇게 노래에 숨결을 불어넣는 게 가수의 구실이라 믿고 자부한다. “보통 곡도 쓰고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가 돼야 음악가라고 인정해 주잖아요. 저는 그러면 되레 한 색깔에 갇힐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 작사·작곡가들의 노래를 제 방식으로 표현해 완성하는 게 더 재미있어요.” 이번 앨범에는 폭을 넓혀 더 골고루 담았다. “대중적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감상용이 아니라 멜로디도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어떤 곡이건 공연에서 관객과 호흡하고 함께 부를 수 있게요.” 서빛나래, 김도훈, 그룹 ‘러브홀릭’의 강현민, 김민 등 곡마다 다른 작곡가가 참여했다. 그는 때론 읊조림으로 때론 내지름으로 곡마다 느낌을 증폭시킨다. 초반에 레게풍의 리듬을 타는 ‘홀릭’에서는 그룹 ‘스토니 스컹크’가 목소리를 보태 독특한 빛깔을 냈다. ‘트랩’에선 그의 랩도 들을 수 있다. 현악기와 피아노 선율을 타는 정통 발라드를 들려주다 이어 디스코 풍으로 넘어간다. 끈적이는 ‘시크릿’은 그의 작사·작곡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곡이다. “비 내리는 밤에 혼자 연습하다 만들었어요.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그렇게 됐어요.” 제각각인 이 노래들을 한몫에 꽤는 건 슬픈 정서다. 차이고 뺏기고 못 잊고 그리워하는 이야기다. “제 목소리가 그런 느낌과 잘 어울린다고들 해요.” 굴곡 많고 호소력 짙기 때문일 테다. “가수가 꿈이었던 엄마 덕에 옛 노래를 많이 들으며 자랐어요. 옛 가요엔 블루스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한 같은 것. 지금도 그런 정서가 묻어 있는 노래를 좋아해요.” “노래하는 게 팔자”라고 말하는 그는 사실 6살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피아노를 쳤다. 노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구제금융 사태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유학 꿈이 좌절된 뒤다. 방황하다 학교 축제 무대에 섰는데 음반 관계자의 눈에 띄었다. “피아노 연주나 연습은 무척 외로운 작업이에요. 무대에 오를 때마다 떨렸죠. 노래는 그렇지 않았어요. 즐거웠고 그렇게 살고 싶었어요.”
그도 이럴 때는 힘들다고 한다. “욕심이 안 채워질 때, 목이 아플 때…. 직업이 아니었다면 쉬어가며, 못하면 못한 대로 갈 수 있을 테지만요. 목 상태가 안 좋으면 너무 우울해요. 다른 사람들까지 그렇게 만들어요. 제가 감정의 기복이 큰 편이거든요.” 그래도 어찌 하겠나. 그는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길을 찾지 못했다. “늙어서도 노래하고 싶어요. 저를 좋아 해주는 사람들도 함께 나이를 먹어가겠죠. 그땐 또 다른 감동을 나눌 수 있을 거예요.”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탁기형 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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