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연극 ‘법정’ 에 세운 고전적 부조리
레프 도진, 류비모프와 함께 러시아 현대 연극의 3대 연출가로 꼽히는 발레리 포킨(59)이 2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러시아 알렉산드린스키 국립극장의 배우들을 이끌고 한국 관객을 찾는다.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공연장(10월10~11일)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10월15~16일)에서 러시아의 문호 고골리의 <검찰관>을 오리지널 캐스팅으로 공연하는데, 무대와 의상도 전부 공수해 온다. 메이어홀드 ‘전위 정신’ 계승러 현대극 3대 연출가 손꼽혀
알렉산드린스키 극장과 방한
리얼리즘+시적생략 선보인다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은 1756년 최초의 황실극장으로 출발한 러시아 극장의 산 역사다. 정식 명칭은 푸쉬킨 러시아 국립아카데미 드라마 극장이며, 고골리의 <검찰관>을 비롯해 그리바도예프의 <지혜의 슬픔>, 투르게네프와 오스트로프스키의 여러 작품이 초연된 곳으로 유명하다. 2003년부터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의 예술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발레리 포킨을 지난 12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만났다. 포킨은 오는 10월 말 경기도립극단 배우들과 공연하는 고골리의 <결혼>을 연습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문화적 자부심으로 가득찬, 무뚝뚝한 그의 얼굴은 마치 ‘검찰관’처럼 오만해 보였다. 포킨은 “이 작품의 주요 내용이 사회 부조리에 대한 것인데, 어느 시대에나 그러한 부조리는 존재한다”며 “200년이나 지난 작품이지만 오늘날의 한국 관객들에게도 흥미로운 내용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포킨의 <검찰관>은 러시아 최고 권위의 공연예술상인 황금마스크 최우수작품상(2004년)을 받았다. 무대감독인 알렉산드르 보롭스키-브로드스키는 같은 해 황금마스크 최우수 디자이너상을, 주연배우 세르게이 파신은 2003년 골든소피트(상 페테르부르크 지역의 공연예술상)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다. 포킨의 <검찰관>은 러시아 고전 연극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골리의 고전적 텍스트 대신 1926년 천재 연출가 메이어홀드가 재구성한 버전을 이용했으나, 메이어홀드가 중요하게 여겼던 에피소드들과 작은 플롯 등을 과감히 삭제해 단순하게 만들었다. 러시아와 폴란드에서 동시에 인민예술가라는 칭호를 받은 포킨은 메이어홀드센터를 만들어 예술감독 및 극장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열렬한 메이어홀드 추종자이기도 하다. 메이어홀드처럼 원작을 뛰어넘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성향의 연출로 정평이 나 있다. 러시아 고유의 리얼리즘적 전통을 이어받았으면서도 과감한 생략과 현대적 해석을 통해 ‘시적 연출’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킨은 “고골리, 체홉, 도스토예프스키 등 세계적인 문호들의 희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러시아의 연극은 결코 세익스피어 연극에 뒤지지 않는다”며 “한국 관객들과 연극계가 러시아 연극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가짜 검찰관 ‘썩은 사회’ 비웃다 이강석 사칭 사기산건때 상연 중단 겪기도
고골리의 희곡 <검찰관>은 어떤 작품?=1820년 말 제정 러시아 시대 지방관리들의 비리를 폭로한 통렬한 풍자극이다. 한 작은 시골마을에 검찰관이 암행감찰을 나올 것이라는 편지가 도착한다. 비리와 부패로 얼룩진 관리들은 마침 도박으로 여비를 몽땅 날린 청년 흘레스타코프를 검찰관으로 오인해 뇌물을 바치고 향응을 베푼다. 이 청년은 주지사의 딸과 결혼까지 약속하지만, 주지사와 관리들을 조롱하는 편지를 남기고 마을을 떠난다. 1836년 초연 당시 격렬한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고골리는 국외로 도피해야 했다. 한국에서는 1932년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이승만 정권 당시 이승만의 양아들이자 이기붕의 장남인 이강석의 이름을 사칭한 사기사건이 일어나자 상연이 중단된 적도 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