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12 17:24
수정 : 2005.10.13 15:26
‘단짝’ 포크의 성장통
그들의 어쿠스틱 기타는 마음을 발그레하게 물들인다. 포크 듀오 ‘재주소년’의 유상봉(22), 박경환(21)은 두 번째 앨범 <피스>에서 섬세한 선율의 그물로 첫 사랑의 설렘부터 쓰라림까지 고스란히 건져 올렸다. “쑥스러워” 사랑 노래가 가득한 앨범에 ‘평화’라는 제목을 달았다는 이 청년들의 성장통이 현의 떨림을 타고 전해진다. 첫 앨범 <재주소년>을 내놓자마자 걸출한 포크 그룹 ‘어떤 날’을 떠올리게 한다는 찬사를 받은 이들, 기타를 타며 세상을 탐색하는 중이다. 그 결실로 투명하고 정겨운 멜로디를 남겼다.
만남 ‘이분단 셋째줄’. 눈 한번 맞추고 얼굴이 빨개져버린 기억이 아로새겨져있다. 기타가 심장 박동에 맞춰 콩닥거린다. 수줍음을 많이 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유상봉의 옛 일기다. “노래는 밝지만 실제로는 훨씬 초라했어요. 학교에서 존재감도 없는 애가 다가갈 수 없도록 멋진 여자애를 힐끗힐끗 보는 게….”
앨범을 내고 낯선 세상과 대면할 때도 심장은 그렇게 요동쳤다. “나에게 없는 자유로움을 네게서 느낄 수 있어.… 두려워 마. 네게도 너만의 미래가 주어졌어.”(새로운 세계) 기타는 신바람을 낸다. “앨범이 나오면 어떻게 될까 두근두근했어요. 이 노랫말 가운데 ‘눈을 감으면 네가 그려져’에서 ‘너’는 미래의 자신이기도 해요.”(박경환)
둘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짝사랑에 속 알이 하던 친구를 도와주겠다고 뭉쳤다가 단짝이 됐다. 그때부터 기타를 쳤지만 진짜 가수가 될지는 몰랐다. 단지 “혼자 가지고 놀 수 있어” 기타와 친구가 됐고, 좀더 재미있게 지내려고 노래를 지었다. 2~3년 동안 만들어 둔 곡들을 집에서 녹음해 2003년 음반사에 돌린 게 ‘재주소년’의 시작이다.
성장 두 번째 앨범을 뜯어보면 홀수 곡들은 ‘사랑’이라는 주제 아래, 짝수 곡들은 ‘평화’ 아래 도열해 있다. 한쪽이 감정의 휘몰이를 따라가면 다음 곡은 한발 물러나 의미를 곱씹거나 위로한다. 홀로 남겨진 “긴긴 이 겨울”을 노래한 ‘잠시 스쳐갈 뿐인 걸’에 이어 리코더 소리를 담은 서정적인 연주곡이 괜찮다고 어깨를 다독여주는 식이다. 그렇게 한 뼘씩 그들은 자란다.
“특별히 좋은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다”는 이들이 보기에 미래는 아직 희뿌옇다. 어릴 때 유상봉은 집배원을 꿈꿨다. “서민적인 노동이고 운치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 ‘아저씨’가 되고 싶었어요.” 그는 여전히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소박한 노동의 길을 모색 중이다. “학교를 계속 다닐까 휴학하고 음악만 할까 걱정 많은” 박경환은 이번 앨범을 내고 불안을 잡도리했다. “막연하게 초조해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닥친 일들에 현명하게 하나씩 대처해가려고요. 해결된 건 하나도 없지만 마음이 편해졌어요.” 흔들리다가도 다잡으며 둘은 노래를 다듬었다.
그리고 현재 생활하고 있는 제주도와 재주를 엮어 ‘재주소년’이라 이름붙인 이들은 한 발짝씩이라도 밖으로 향한다. ‘루시아나’에는 포크를 바탕으로 일렉트로닉 요소를 가미했다. 여기에 톱으로 낸 윙윙 소리가 들락날락한다. “일렉트로니카를 좋아해요. 포크 듀오라고 하는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그 틀 안에만 있고 싶지 않아요.”(박경환) ‘루시아나’는 박경환이 만들어낸 인물이다. “더 큰 세계를 경험하고 싶어 방황하는 사람이에요. 제 모습의 투영일 수도 있죠.”
그래서 사랑이 “잠시 스쳐갔던 너의 눈빛과 마음이 맞닿은 바로 그 순간”(노란수첩)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고 물음표를 달면서도 이들은 쓰린 반복 경험을 마다하지 않는다. 처음보다 훨씬 처연해진 음색으로 두 번째 ‘이분단 셋째줄’이 앨범의 말미에 흐른다. 다시 뛰는 심장을 느끼며 둘은 “이건 마치 겨울의 첫 날인 것 같아”(겨울의 첫날)라고 노래하지만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그 속으로 뛰어들 채비를 하는 수밖에 없다.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는 13일 저녁 8시 서울 홍대앞 사운드홀릭에서 들을 수 있다. 같은 곳에서 25일부터 12월 20일까지 격주로 밤 10시에 이들의 ‘밤소풍’ 콘서트가 이어진다. 포크부터 록, 클래식까지 두루 들려줄 예정이라고 한다. (02)3142-4203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문라이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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