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물적이고 유들유들한 상상력
세계적 스타작가인 미국의 매튜 바니(38)는 사교장의 쇼무대처럼 변해가는 세계 현대미술 동네에서 뜨는 작가의 전형을 대변한다. 사방 팔방으로 튀는 개념만 머리 속에 넣고 몸의 일거수 일투족을 작품화한다. 탄성밴드나 드로잉 도구를 달고 신체의 일부분을 구속한 채 드로잉 흔적을 남기는 구속의 드로잉 연작이나 그리스 신화의 괴수인 사티로스로 분장해 가죽을 벗기는 괴팍한 퍼포먼스 영상 등으로 가는 곳마다 시끌시끌한 화제를 남기는 연예인 같은 작가가 그다.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이 개관 1돌을 맞아 초청한 그의 전시 ‘구속의 드로잉’은 의학도, 미식축구 선수, 모델 출신의 다채로운 경력을 지닌 이 희대의 예술 연예인이 펼치는 재주마당이라고 보면 된다.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던 ‘크러매스터 사이클’, ‘구속의 드로잉 9번’ 등의 독특한 영상·영화 작업을 비롯해 8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조각설치, 영상, 사진, 드로잉 등을 한자리에 선보이고 있다. 인간 육체의 한계성과 남녀 성의 분화 등 몸의 의미에 관심이 많은 작가의 작업세계는 난해한 구석이 많다. 자궁 속에 착상한 인간의 배아가 남녀로 구분되기 전 성에너지의 무한한 창조력을 드로잉이나 영상물 속에 상징적으로 심은 그의 작업들은 신화, 과학, 심리학, 철학 등을 아우른다. 영화배우로 출연하는 쇼맨십과 기발한 소재 선택 등으로 일단 볼만한 스펙터클을 만들어낸다. 작업중 떨어진 가루도 작품주어진 상황에 맞는 난장 펼쳐 가장 눈길을 끄는 출품작은 일본의 포경선을 배경으로 한 영화 <구속의 드로잉 9번>이다. 이 배안에서 외지의 남녀 두 명이 사랑에 빠져 하반신을 잘라내고 고래로 변한다는 엽기적이면서도 신비스런 구도를 담은 작품인데, 일본전통 무가로 대변되는 독특한 동양 문화, 육지 포유류가 고래로 변했다는 진화론, 고래를 상징하는 바셀린 덩어리들이 갑판에서 부서지는 모습이 산업사회의 이미지와 뒤섞이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니의 실제 연인이자 영화 <어둠 속의 댄서>주연을 맡았던 가수 뷔욕이 함께 출연했다. 전시장에 달린 모니터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고래를 상징하는 바셀린 덩어리가 흘러내린 설치작업과 크릴새우 껍데기가 달라붙은 길쭉한 고래 향료 덩어리인 용연향, 고래를 뭍으로 끌어올리는 선창가 경사면 구조물의 이미지를 표현한 대형 조각 등 난해한 작품들을 함께 보게 된다. 퍼포먼스, 영상, 조각, 사진 등이 결합한 5편의 연작 <크리매스터>도 상영한다. 가발을 쓰거나 썰매를 끄는 등 구속받는 상태에서 작가의 움직임을 기록한 <구속의 드로잉> 등을 보면 그의 영악한 작품 화술이 느껴진다. 디지털 카메라로 바셀린 작품을 그대로 재현하고 심지어 작업 재료와 작업 중 떨어진 가루조차 작품으로 만드는 영악하고 기민한 상상력이 최대 무기다. 어떤 상황과 장소에서든 그 상황에 맞게 난장을 펼쳐내는 그의 즉물적이고 동물적인 조형 감각과 유들유들한 상상력이야말로 매튜 바니 전의 특색이다. 지하층 어린이 전시는 난해한 출품작들을 재미있게 갈무리한 재치가 보인다. 내년 1월8일까지. (02)2014-6901. www.leeum.org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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