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12 18:54
수정 : 2005.10.13 15:22
이 눈대목 -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그럼, 이제 어떤 무기를?”
‘손님’의 대사가 끝나기 무섭게 암전이 찾아든다. ‘딜러’와 ‘손님’이 폭포수처럼 주고받던 ‘철학적 만담’은 그렇게 끝난다. ‘이제 뭔가 보여주려나?’하고 ‘견뎌왔던’ 관객들은 뒷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원작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를 쓴, 20세기 최후의 문제적 작가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나, 동명의 연극을 무대에 올린 극단 산울림이나 그런 관객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콜테스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나와 타인 사이에 놓인 심연과 그것이 극복되지 못한 과정이지, 그 결과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임수현 서울여대 불문과 교수) 오죽하면 산울림이 포스터에서 “연극을 오락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안보셔도 좋습니다”라고 선언했을까?
‘파는 자’와 ‘사는 자’ 사이의 긴장은 인간 관계의 근간을 이룬다. 콜테스의 또 다른 작품인 <서쪽부두>의 팍이 클레르에게 “(내가 너의 벗은 모습을 봤으니) 나와 셈셈이 되려면 너도 내가 벗은 걸 봐야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딜러는 곡선과 욕망을, 손님은 직선과 부재를 대변한다. 둘의 대화는 끝없이 엇나간다. 말을 통한 설득이 실패하자, 관계는 파국을 맞는다. 콜테스의 작품을 파리 중앙 무대에 알린 연출가 파트리스 셰로는 세번째 각색에서 두 인물이 뒤엉켜 싸우는 것으로 막을 내리기도 했다.
국립극단 예술감독을 지내고 내년부터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을 맡게 된 김철리씨가 손님역을, <고도를 기다리며>로 영희연극상을 받은 중견배우 박용수씨가 딜러역을 맡았다. 임수현 교수가 번역한 희곡을 먼저 읽고 가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1월6일까지 신촌 산울림 소극장.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