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같지 않게, 더 촌스럽게”
“시골처녀 딱 내모습이에요”
의심할 겨를 없이, 발레는 귀족들의 문화다. 그것은 발레가 태동한 16세기 프랑스 궁정에서만이 아니라, 국내총생산(GDP) 세계 11위를 자랑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역사상 최초로 발레가 서민의 눈높이로 내려왔던 적이 있었으니, 바로 장 도베르발이 안무한 <고집쟁이 딸>(원제 ‘라 필 말 가르데’)이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2주일 전인 1789년 7월1일 초연된 이 작품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여자 주인공 리즈는 평범한 농가의 처녀다. 돈은 많지만 멍청한 부자와 결혼할 것을 강요하는 엄마를 유쾌하게 따돌리며 자신의 사랑을 이루는 ‘모던 걸’이다. 국립발레단이 지난 2003년 국내 초연했던 <고집쟁이 딸>을 15~2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다시 올린다. 주연을 맡은 강화혜(28·?5M사진)씨를 10일 저녁 예술의전당 4층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재일동포 3세인 강씨는 일본 케이(K)-발레단 수석무용수이며, 지난 2003년부터 국립발레단의 주요 공연에 객원무용수로 참여하고 있다. 94년 러시아 볼쇼이 발레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드레스덴 발레단 수석무용수를 지냈다. 키 160㎝에 40㎏으로 보통 발레리나보다 훨씬 여윈 몸이다. 하루 종일 연습하느라 지쳤을 텐데도, 인터뷰 내내 방긋방긋 웃는 싹싹한 여인이었다. -작품 내용에서처럼 최근 결혼을 했다던데, 축하한다. =지난 9일 결혼을 했다. 남편도 재일동포 3세로, 9살 연상의 회사원이다. 이 작품을 준비하느라 신혼여행은 못 갈 것 같다. -<고집쟁이 딸>은 어떤 작품인가. 그리고 리즈 역을 어떻게 소화하려고 하나. =엄마 역을 비롯해 재미있는 캐릭터들이 많은 코믹물이다. 연습하면서도 계속 웃게 된다. 리즈는 엄마한테 못되게 구는 딸이지만 실제로는 엄마를 사랑하는 딸이다.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연기가 아니라 그냥 내 얘기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하려고 한다. 이름은 리즈지만 ‘화혜’ 그대로가 될 것이다. 다른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리즈를 너무 예쁘고 우아한 공주로 연기하는 게 아쉬웠다. 리즈는 시골처녀다. 발레리나 같지 않게, 좀 더 촌스럽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리즈와 자신의 어떤 점이 비슷한가? =엄마가 집안 일 하라고 잔소리 하면 리즈는 잘 듣지 않는다. 나도 엄마가 공부하라고 잔소리 했지만 잘 듣지 않았다. 난 발레만 하고 싶었다.
-엄마가 발레 하는 걸 싫어했나. =그런 건 아닌데, 공부와 발레를 다 잘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내가 한 때 발레를 잘 못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부터는 공부하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언제 발레를 시작했나. =5살 때였다. 언니가 자세가 좋지 않아 교정치료를 하려고 발레를 배웠다. 학예회 때 엄마가 날 데려갔는데, 언니의 예쁜 모습에 반해 배우게 해달라고 졸랐다. -발레가 어렵지 않나. =항상 두렵다. 10대일 때는 무대에 오르는 것을 무서워 하지 않았다. 정말 즐겁게 했다. 그런데 지금 일본에서는 대부분 내가 누구인지 안다. 그들은 ‘정말 잘 하겠지’하고 기대를 한다. 그래서 부담을 많이 느낀다. -발을 좀 보여줄 수 있나. (그는 쑥스러워하면서도 스스럼없이 토슈즈를 벗었다. 오랜 연습의 산물인 듯, 발등과 발가락 곳곳에 굳은 살이 박인 ‘고단한’ 발이었다.) =12살 때부터 굳은 살이 생겼다. 지하철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 발을 보고 ‘저 발 좀 보라’고 수군거리는 걸 들은 뒤로는 여름에도 절대 샌들을 신지 않는다. 드레스덴에 있을 때는 인대가 끊어져 석달동안 무대에 서지 못한 적도 있다. -할아버지 때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나. =1995년 독일 로잔느 콩쿠르에 참석하기 전까지 나는 내가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권의 이름을 보니 국적이 한국이고, 이름은 ‘강화예’였다. 그후 나는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국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남자 무용수가 토슈즈를 신고 엄마 역을 맡는다. 주연만을 보지 마시고 다른 캐릭터들을 눈여겨 봐달라. 재미있을 것이다. 어린 아이들도 재미있어 할 것이다. 온 가족이 같이 와서 즐겼으면 좋겠다. 글 이재성 기자, 사진 김태형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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