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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6 17:32 수정 : 2005.10.16 17:32

2005년 ‘핀터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던 연극 <핫 하우스>의 한 장면.

‘핀터스러운 연극’ 은…“모호함으로 관객참여 유도”

“오히려 늦은 감이 있어요. 진작에 받았어야 하는 사람인데….”

200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의 극작가 해럴드 핀터(75)를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데 앞장서 온 송현옥 세종대 교수(44·영화예술)는 “희곡이라는 장르가 시나 소설에 비해 영향력이 작기 때문”이라며 “해럴드 핀터는 연극뿐 아니라 문학에도 큰 영향을 끼친, 현존하는 최고의 지성 작가”라고 소개했다. 송 교수는 지난 2002년부터 올해까지 세차례 열린 ‘핀터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각색과 연출까지 도맡아 온 해럴드 핀터 전문가다. 2002년에는 <덤 웨이터>, 2005년에는 <핫 하우스>를 연출했다.

“우리나라에는 핀터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좀 어렵기 때문일 텐데, 알고 있더라도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많죠. 원래 핀터의 작품에는 사실주의와 부조리성이 섞여 있는데 부조리성을 빼고 사실주의적으로만 다룬다든가, 멜로나 에로틱한 부분만을 뽑아내는 경우도 많았죠.”

‘왜’ 가 빠진 드라마 퍼즐
마지막 조각 찾기는 관객 몫
핀터 페스티벌 2005년안 또 열수도

핀터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 기존 연극들이 대중적 입맛을 추종하다보니 이른바 “핀터스러운” 맛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핀터 페스티벌’은 해럴드 핀터를 제대로 알리고 상업적으로 흐르는 우리나라 연극계 풍토까지 바꿔보겠다는 포부에서 시작한 것이다. 정경숙 인천 가톨릭대학교 교수 등 연출진들이 사재를 털어가며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10월2일 끝난 올해 행사는 객석 점유율이 78%에 이를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그는 “핀터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나면 스태프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번에 핀터라는 작가를 알게 돼서 너무 좋았다’고 얘기한다”며 “핀터가 얼마나 훌륭한 작가인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핀터의 작품 세계를 ‘모호함’이라는 단어로 압축해 설명한다. “관객들의 지적 참여를 유도하려고 일부러 동기와 결과를 분명히 드러내지 않는” ‘전략적 모호함’이다. 이를 통해 ‘관객들과의 게임’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송현옥 세종대 교수
“제가 올해 페스티벌에서 연출한 <핫 하우스>라는 작품은 정부가 운영하는 한 요양소에서 환자들이 폭동을 일으켜 소장 이하 고위직들이 죽는 얘기거든요. 그런데 누가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가 안 나와요. 아무도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거죠. 처음에 봤을 때는 일반적인 사실주의 드라마인데, 나중에 보면 ‘왜’가 빠져있어요. 그걸 관객들이 스스로 찾아내도록 유도하는 거죠.”


핀터는 이데올로기나 도덕, 관습, 종교 뿐만 아니라 언어마저도 ‘게임’으로 본다. 연극도 게임이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스스로 퍼즐을 맞춰가도록 게임을 유도하는 것이다. “포스트포더니즘의 해체적 관점에 바탕을 둔 일종의 ‘수용 미학’”이다.

송 교수는 “어떻게 하면 관객들과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작가의 의도를 전해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며 “특히 메뚜기가 뜀을 뛰는 것처럼 앞뒤가 뭉텅뭉텅 잘린 느낌이 드는, 텍스트의 비어 있는 ‘틈’을 배우들이 이해하게 만드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처음 핀터 작품을 하겠다고 하니까, 알만한 사람들조차도 다들 ‘너무 어렵잖아’라고 말했어요. 이제 노벨상을 탔으니까 좀 달라지겠죠. 기획사쪽에서 올해 안에 페스티벌을 한 번 더 하자고 제안해 왔는데, 좋은 기회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에서 다시 한번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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