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한양레퍼토리 씨어터에서 배우 설경구(왼쪽)씨와 연출가 최형인씨가 오는 10월2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열연할 ‘러브레터’관련 기자간담회를 열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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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만에 대학로 연극무대, 스승연출 ‘러브레터’ 주연 “깔끔하고 똘망똘망한 인물”
“이게 뭐야, 대사가 입에 안 붙잖아.” 선생(최형인 한양대 연극영화과 교수·극단 한양레퍼토리 대표)은 늘 제자(설경구)의 연기가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런 선생에게 제자는 오기로 답한다. “알았어요. 공연 전까지 이 책(대본) 한 권 다 외우면 되죠?” 9년만에 스크린에서 연극 무대로 돌아오는 설경구와, 연출자 최형인이 연극 <러브레터> 연습장에서 최근 주고받은 대화다. 최 교수는 한양대 출신 설경구의 은사이기도 하다. 18일 대학로 한양레퍼토리 씨어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최 교수와 함께 모습을 나타낸 설경구는 몹시 수줍음을 탔다. 그는 얼마전 영화 <사랑을 놓치다>를 끝내고 한바탕 크게 앓아 누웠다. 당연히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다. “너무 어려워요. (목소리) 톤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연극하던 시절에 바탕골소극장에서 <러브레터>를 보고 감동을 받았거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더 나이 먹어서 하고 싶은 작품이었는데, 조금 일찍, 예습한다는 심정으로 하고 있습니다.”(설경구) “한 달에 13㎏ 빼는 애니까 외워 가지고 오겠죠. 지 이름 걸고 하는 건데 망신당하게 하겠어요? 경구는 똑똑한 애니까, 외워 오겠다면 정말 외워올 거에요. 일단 외우면 감정 잡는 거야 뭐, 배우니까.”(최형인) 설경구의 학창시절 최 교수의 연기지도는 혹독했다. 학생들의 방어벽을 허물려고 구석에 몰아넣고 때리기도 했다. “특히 여학생들이 많이 울었고, 선생님도 같이 울었어요. 소극장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기도 했죠. ‘연기라는 게 마음과 마음이 통해야 나오는 거구나’ 하는 것을 그때 배웠습니다.” 연기를 때려치우고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는 그를 설득해 다시 연기의 길로 돌아오게 한 것도 최 교수였다. 이번 연극의 출연을 먼저 제의한 것 역시 최 교수다. “경구가 최근에 한 역할이 거의 다 비슷하지 않았어요? 캐릭터의 폭이 한정되는 것 같았어요. <공공의 적> 시리즈처럼 너무 헐렁한 역할만 하는 것 같고. 그래서 이번엔 미국 상원의원 앤디 역을 한 번 해보라고 한 거에요.” 설경구는 “선생님이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는 않지만, 선생님 수업을 들으면서 연기를 배웠기 때문에 선생님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러브레터>의 앤디는 “멋있고 깔끔하고 똘망똘망하고 아름답고 그런 인물”(최형인)이다. 이 역할을 통해 새로운 연기의 지평을 열었으면 하는 게 제자를 아끼는 스승의 마음이다. “직접 얘기한 것도 아니고, 같은 과 동기한테 얘기했더니, 경구가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러브레터>는 미국 중산층의 삶의 문제를 다뤄온 미국 극작계의 거목 알버트 람스델 거니(1930~)가 1989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같은 해 미국에서 초연된 이후 크리스마스와 발렌타인데이 무렵에 고정 레퍼토리로 공연되고 있다. 연극은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앤디와 멜리사가 평생 동안 주고받은 편지를 읽는 형식이다. 따라서 주인공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50대까지 폭넓은 연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러 목소리나 외양을 꾸미지는 않기로 했다.
설경구는 이호재, 최용민, 이대영, 김경식 등 다른 4명의 배우와 번갈아 앤디 역을 맡는다. 여주인공 멜리사의 캐스팅도 화려하다. 최 교수를 비롯해, 연극과 영화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정경순, 연극배우 지자혜, 임유영, 김보영이 출연한다. 10월21일~12월31일 대학로 한양레퍼토리 씨어터. (02)764-6460.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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