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의상 연출은 온전히 내 몫” 세노그라퍼 한진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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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위아래사람들
한진국(37)씨는 세노그라퍼다. 세노그라퍼란 무대와 의상 연출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우리에겐 무척 낯설다. 우리 말로 풀면 ‘무대 시각 디자이너’쯤 될 것이다. 그런데 흔히 말하는 ‘무대디자이너’와 뭐가 다를까? “연출가가 배우를 상대로, 안무가가 무용수를 상대로 작품을 이끌어간다면, 세노그라퍼는 공간 전체에 대한 개념을 연출하는 거죠. ‘공간의 시각화’라고 할까요?” 그동안 우리나라의 무대디자이너들이 연출가나 안무가가 짜놓은 ‘각본’에 따라 일을 했다면, 한씨는 공간 활용이라는 관점에서 독자적으로 무대와 의상 연출에 접근한다. 한마디로 ‘자기 생각을 가진’ 무대디자이너인 셈이다. 연극, 음악뿐 아니라 예술사와 건축사, 심리학까지 섭렵해야 할 수 있는 분야다. “처음에 작품의 컨셉을 잡는 작업이 중요해요. 배우들과 공감대가 생기지 않으면 훌륭한 무대와 의상이 나올 수 없어요. 같은 공간이 슬픈 공간이었다가, 행복한 공간이 되기도 하고, 판타지한 공간이 되기도 하죠. 예를 들어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재’를 언제 느낄까요? 아버지가 앉아계시던 빈 의자의 애틋함에서 그 느낌을 찾을 수 있죠.” 작품 컨셉트 잡은뒤 독자적 작업무대디자이너보다 권한 커 무용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김매자 안무의 <심청>에서는 브이아이피용 객석에 구불구불한 길을 깔아 극장 관계자들을 당혹케 했고, 전순희의 <에클립스>에서는 우주를 표현하기 위해 무대의 3면을 다 막고 영상 화면을 설치하기도 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개막식 의상을 연출했고, 2004년 아프리카 축구선수권대회,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 개·폐막식 의상 감독을 지냈다. 그럼 연출에도 개입하는 것인가? 그는 매우 조심스러워 했다. “이를 테면 무용수가 무대의 어느 부분에서 나오는 게 슬픈 감정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지, 외로운 느낌을 더 잘 자아낼 수 있는지를 (안무가와) 함께 논의하기도 하죠.”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의 인생 모델은 미국의 연출가 로버트 윌슨인지도 모른다. 세노그라퍼 출신의 청각장애인으로 연극 연출에 까지 뛰어든 입지전적 인물 말이다. 한씨의 어렸을 적 꿈은 무용수였다. 리틀엔젤스의 공연을 보며 꿈을 키웠다. 서울 미림여고에 다닐 때는 친구들과 함께 연극반을 창립했고,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태평무의 명인 강선영(81)씨로부터 살풀이와 승무를 사사받기도 했다. 대학(중앙대 무용과)에 들어갔을 때는 꿈을 다 이룬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들어가니까 춤이 아니라 무대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에요. 외국의 공연과 비교해 우리 공연이 뭔가 모자란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뭘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죠.” 결론은 무대였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프랑스의 무대예술학교(ESAT)로 유학을 갔다. 세노그라퍼와 영화세트, 실내건축 등을 가르치는 전문학교인데, 그는 이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졸업작품을 준비하느라 두 달 가까이 밤을 새다가 심사 전날 쓰러졌어요. 구급차가 출동했는데, (병원에) 안가겠다고 버텼죠. 입원하면 시험을 못보잖아요. 프랑스 애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라구요.” 세노그라퍼라는 개념도 생소한 곳에서 그가 이 만큼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집요한 성격 덕분이다. 그래서 별명도 ‘테러리스트’ 혹은 ‘다트’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저는 양보다 질을 추구해요. 한 작품 한 작품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죠. 지금은 그냥 이 놀이터가 좋아요.” 오는 12월이면 그가 1년 전부터 준비해온 공연이 막을 올린다. 정동극장이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을 맞아 준비한 가족극 <안데르센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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