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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6 16:58 수정 : 2005.10.27 15:52

[리뷰] 국립발레단 ‘고집쟁이 딸’

모든 것에 우세한 사랑의 승리. 정분난 ‘아랫것’들이 밥맛없는 상전을 조롱하고 따돌리는 유쾌한 익살 발레. 장 도베르발의 1789년 안무작 <고집쟁이 딸>은 경박한 통속극의 전형 같지만, 당대의 맥락에서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18세기에 마구 쏟아졌던 연애 모티프의 소설과 시민극은 당시 막 눈뜨기 시작한 민주적 자아의 발언이었다. 자연스러운 인간성의 발현이 그 자체로 사회질서에 위협이 되던 시기였다.

사실 발레의 기원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태양으로 분한 루이 14세의 발레는 절대왕권을 과시하는 국가적 이벤트였다. 왕과 귀족의 전유물이던 발레가 서민들에게 무대를 내어준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고집쟁이 딸>은 말 그대로 서민의,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발레이다. 물론 초연 2주 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을 구호처럼 내걸진 않지만, 정치적 주체의 변화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

무대가 반영한 사회적 욕구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주문처럼, 개인의 감정과 충동을 긍정한다. 이와 함께 환경의 구속과 제약을 불편하게 여긴다. <고집쟁이 딸>의 리즈 역시 부잣집 아들이라는 이유로 바보 알랭과의 결혼을 강요하는 어머니 시몬느에 끈질기게 반항한다. 어머니 손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지만 마음은 늘 콩밭에 가 있다. 결국 사랑하는 콜라스와 맺어지는 못 말리는 리즈. 대체 사랑이 뭐기에.

변화의 바람은 형식에서도 자기혁신을 요구했다. 무대는 기교나 가식을 벗어버리고 자연스러움과 진정성을 체현하길 원했다. 발레의 개혁자 노베르의 연극적 발레에는 당시의 시대정신이 스며있다. 그의 추종자 도베르발의 <고집쟁이 딸>은 그 결실을 여전히 저장하고 있다. 좌충우돌하는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사랑의 건강성, 삶의 명랑성은 팬터마임에 가까운 연기와 캐릭터의 생생함 속에 살아온다.

이번에 주역을 맡은 강화혜·김현웅(18일)은 화사한 봄날 같은 커플이었다. 특히 강화혜의 미려한 테크닉과 풍부한 표정연기가 생기발랄했고, 차세대 스타를 예감하게 하는 신예 김현웅은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는 역이었으나 탄성을 자아내는 무대 매너와 푸릇푸릇한 연기의 잠재성이 엿보였다. 또 다른 주역 전효정·이원철 커플(19일)은 탄탄한 기량을 바탕으로 아기자기한 맛을 자아냈다. 전효정은 희화적 연기가 약간 과장스러웠고, 이원철은 초연 때보다 더한 자신감과 탄력으로 시선을 휘어잡았다.

전 세계적으로 드문 레퍼토리를 발굴해낸 것은 국립발레단의 개가이다. 2년 전 초연에 비해 더욱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이라도 <고집쟁이 딸>과 같은 삶에 밀착한 낙천성과 소박한 낭만을 되찾은 게 다행이다.

허명진/무용평론가 chorei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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