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자세하게 설명해달라. ▲1979년 1월 '그때 그 사람'으로 신데렐라가 된 뒤 1980년 10ㆍ26이 터지면서 방송 활동 금지 조치를 당했다. 이후 1984년에 방송 금지가 해제되고 '무궁화'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가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해 금지곡이 됐다. 나중에 내가 방송에 나오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가 떠올라 전두환 대통령의 이미지 굳히기에 방해가 돼 금지했다고 들었다. 나는 방송에서 꺼리는 가수였다. 방송국이 어렵고 무서웠다. --또 다른 사례가 있는가. ▲1982년에는 일본 NHK방송국에서 일본 가수와 함께 무대를 꾸며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런데 그때 외국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금지돼 무산되고 말았다. 1987년 외국에 나갈 수 있게 된 뒤 비행기를 타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1996년에는 우즈베키스탄으로 공연을 하러 갔는데 그 곳에서 같이 간 연기자들과 마찰이 생겼다. 당시 나라 망신을 시킨 것처럼 돼 다시 방송 금지를 당했다. 방송국에 폭력을 많이 당해 봤다.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 ▲방송국에 가면 책임프로듀서(CP)들이 내려와서 인사를 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사람들의 호기심 때문에 무거웠던 시선도 벗어버리려고 책도 내고 토크쇼에도 나갔다. 매니저와도 올해 처음 함께 일하게 됐고 이런 공식적인 기자회견도 처음이다. 10ㆍ26 이후 10년이 넘게 매년 10월이 되면 기자들이 나를 찾아왔다. 그런데 어제는 10ㆍ26이라는 생각보다 '보궐선거와 같은 날이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주고 비관적이고 절망적이며 이뤄지지 않는 사랑에 대해 가사를 써왔다. 그런데 친구들이 조금 더 밝게 가사를 써보라고 지적해줬고 '비나리'의 가사를 쓸 때 끝을 희망적으로 바꿨다. 이 노래부터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제일 좋아하는 가사는 '백만송이 장미'의 노랫말이다. --25년 전과 지금 노래를 할 때 달라진 점은 없나. ▲많은 가수들이 10년이 넘게 같은 노래를 부르면 지겹다는 생각을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그 사람'을 노래하면 항상 그때 그 사람을 생각하며 노래를 부른다. 가능한 한 감동을 변형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세월이 가면서 탁해지고 굵어지긴 했지만 목소리가 워낙 맑고 악을 쓰는 창법이 아니기에 예전 목소리를 유지하고 있다. 조금 더 힘이 실린 것 같다. --이번 공연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좋은 극장에서 처음 이런 공연을 펼칠 수 있어서 좋다. 공연으로 보여드리겠다는 욕심밖에 없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피아노도 치고 안무도 보여줄 예정이다. 노래에 따라 쇼적인 무대로 만들기 위해 안무를 넣었다. 내가 춤을 춘다고 하면 다들 놀라는데 할아버지는 판소리를 하셨고 고모는 가야금 명인이시며 아버지는 민속학자이셨다. 가문에서만 모두 음반 150장을 내놓는 등 워낙 춤과 노래, 악기 등에 능통한 집안이다. 춤을 계속 발전시키고 싶은 욕심도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미자 선생님이나 나훈아 선생님 등 좋은 트로트가 너무 많다. 내년 5월에는 트로트만 모아서 앨범을 낼 계획이다. 12곡 중 6곡은 정통 트로트 곡으로, 6곡은 창작곡으로 넣을 생각이다. 미국 맨해튼에서 2년을 살았다. 젊었을 때 하고 싶었던 음악 공부를 했다. 그 2년이 20년을 보상하는 시간이었다. 미국에서 많은 에너지를 받아왔다. 이제 자유롭고 뒷받침도 되니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울 생각이다. 1년이나 1년 반에 앨범을 한 장씩 꾸준히 내고 싶다. 안인용 기자 djiz@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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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5주년 음반 낸 심수봉 |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수로 제대로 활동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지만 모두 섭리라고 생각해요. 지금 가장 마음이 편합니다."
지난해 데뷔 25주년을 맞은 가수 심수봉이 뒤늦게 기념음반을 냈다. 심수봉은 1978년 대학가요제에서 '그때 그 사람'을 통해 얼굴을 알린 뒤 1979년 데뷔 앨범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가수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올 1월 내놓은 '꽃'까지 모두 10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했다.
가수 인생 25주년 기념음반인 베스트앨범 '심수봉 베스트 오브 베스트'에는 '그때 그 사람', '사랑밖엔 난 몰라', '비나리' 등 그의 주옥 같은 히트넘버 33곡이 수록돼 있다.
또 다음달 16일 오후 4시와 오후 8시 두 차례에 걸쳐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대규모 공연 '사랑밖엔 난 몰라'를 개최한다.
심수봉은 27일 오후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데뷔 25주년 기자간담회를 갖고 25년 동안 수 차례에 걸친 방송금지 등으로 힘들었던 얘기를 털어놓았다. 또 "이번 콘서트에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 등 어려웠을 때 도와줬던 분들을 초대하고 싶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데뷔 25주년을 맞은 감회는.
▲사실 올해는 데뷔 26년이다. 그런데 지난해 제대로 25주년을 축하하지 못해 올해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 나는 방송 금지 등으로 앨범을 낸 것 외에 가수활동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솔직히 전성기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데뷔 25주년이라고 하지만 올해 처음 가수활동을 한 거나 다름이 없다. 예전과 비교하면 세상이 너무 많이 변했다.
--더 자세하게 설명해달라. ▲1979년 1월 '그때 그 사람'으로 신데렐라가 된 뒤 1980년 10ㆍ26이 터지면서 방송 활동 금지 조치를 당했다. 이후 1984년에 방송 금지가 해제되고 '무궁화'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가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해 금지곡이 됐다. 나중에 내가 방송에 나오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가 떠올라 전두환 대통령의 이미지 굳히기에 방해가 돼 금지했다고 들었다. 나는 방송에서 꺼리는 가수였다. 방송국이 어렵고 무서웠다. --또 다른 사례가 있는가. ▲1982년에는 일본 NHK방송국에서 일본 가수와 함께 무대를 꾸며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런데 그때 외국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금지돼 무산되고 말았다. 1987년 외국에 나갈 수 있게 된 뒤 비행기를 타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1996년에는 우즈베키스탄으로 공연을 하러 갔는데 그 곳에서 같이 간 연기자들과 마찰이 생겼다. 당시 나라 망신을 시킨 것처럼 돼 다시 방송 금지를 당했다. 방송국에 폭력을 많이 당해 봤다.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 ▲방송국에 가면 책임프로듀서(CP)들이 내려와서 인사를 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사람들의 호기심 때문에 무거웠던 시선도 벗어버리려고 책도 내고 토크쇼에도 나갔다. 매니저와도 올해 처음 함께 일하게 됐고 이런 공식적인 기자회견도 처음이다. 10ㆍ26 이후 10년이 넘게 매년 10월이 되면 기자들이 나를 찾아왔다. 그런데 어제는 10ㆍ26이라는 생각보다 '보궐선거와 같은 날이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주고 비관적이고 절망적이며 이뤄지지 않는 사랑에 대해 가사를 써왔다. 그런데 친구들이 조금 더 밝게 가사를 써보라고 지적해줬고 '비나리'의 가사를 쓸 때 끝을 희망적으로 바꿨다. 이 노래부터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제일 좋아하는 가사는 '백만송이 장미'의 노랫말이다. --25년 전과 지금 노래를 할 때 달라진 점은 없나. ▲많은 가수들이 10년이 넘게 같은 노래를 부르면 지겹다는 생각을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그 사람'을 노래하면 항상 그때 그 사람을 생각하며 노래를 부른다. 가능한 한 감동을 변형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세월이 가면서 탁해지고 굵어지긴 했지만 목소리가 워낙 맑고 악을 쓰는 창법이 아니기에 예전 목소리를 유지하고 있다. 조금 더 힘이 실린 것 같다. --이번 공연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좋은 극장에서 처음 이런 공연을 펼칠 수 있어서 좋다. 공연으로 보여드리겠다는 욕심밖에 없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피아노도 치고 안무도 보여줄 예정이다. 노래에 따라 쇼적인 무대로 만들기 위해 안무를 넣었다. 내가 춤을 춘다고 하면 다들 놀라는데 할아버지는 판소리를 하셨고 고모는 가야금 명인이시며 아버지는 민속학자이셨다. 가문에서만 모두 음반 150장을 내놓는 등 워낙 춤과 노래, 악기 등에 능통한 집안이다. 춤을 계속 발전시키고 싶은 욕심도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미자 선생님이나 나훈아 선생님 등 좋은 트로트가 너무 많다. 내년 5월에는 트로트만 모아서 앨범을 낼 계획이다. 12곡 중 6곡은 정통 트로트 곡으로, 6곡은 창작곡으로 넣을 생각이다. 미국 맨해튼에서 2년을 살았다. 젊었을 때 하고 싶었던 음악 공부를 했다. 그 2년이 20년을 보상하는 시간이었다. 미국에서 많은 에너지를 받아왔다. 이제 자유롭고 뒷받침도 되니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울 생각이다. 1년이나 1년 반에 앨범을 한 장씩 꾸준히 내고 싶다. 안인용 기자 djiz@yna.co.kr (서울=연합뉴스)
--더 자세하게 설명해달라. ▲1979년 1월 '그때 그 사람'으로 신데렐라가 된 뒤 1980년 10ㆍ26이 터지면서 방송 활동 금지 조치를 당했다. 이후 1984년에 방송 금지가 해제되고 '무궁화'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가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해 금지곡이 됐다. 나중에 내가 방송에 나오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가 떠올라 전두환 대통령의 이미지 굳히기에 방해가 돼 금지했다고 들었다. 나는 방송에서 꺼리는 가수였다. 방송국이 어렵고 무서웠다. --또 다른 사례가 있는가. ▲1982년에는 일본 NHK방송국에서 일본 가수와 함께 무대를 꾸며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런데 그때 외국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금지돼 무산되고 말았다. 1987년 외국에 나갈 수 있게 된 뒤 비행기를 타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1996년에는 우즈베키스탄으로 공연을 하러 갔는데 그 곳에서 같이 간 연기자들과 마찰이 생겼다. 당시 나라 망신을 시킨 것처럼 돼 다시 방송 금지를 당했다. 방송국에 폭력을 많이 당해 봤다.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 ▲방송국에 가면 책임프로듀서(CP)들이 내려와서 인사를 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사람들의 호기심 때문에 무거웠던 시선도 벗어버리려고 책도 내고 토크쇼에도 나갔다. 매니저와도 올해 처음 함께 일하게 됐고 이런 공식적인 기자회견도 처음이다. 10ㆍ26 이후 10년이 넘게 매년 10월이 되면 기자들이 나를 찾아왔다. 그런데 어제는 10ㆍ26이라는 생각보다 '보궐선거와 같은 날이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주고 비관적이고 절망적이며 이뤄지지 않는 사랑에 대해 가사를 써왔다. 그런데 친구들이 조금 더 밝게 가사를 써보라고 지적해줬고 '비나리'의 가사를 쓸 때 끝을 희망적으로 바꿨다. 이 노래부터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제일 좋아하는 가사는 '백만송이 장미'의 노랫말이다. --25년 전과 지금 노래를 할 때 달라진 점은 없나. ▲많은 가수들이 10년이 넘게 같은 노래를 부르면 지겹다는 생각을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그 사람'을 노래하면 항상 그때 그 사람을 생각하며 노래를 부른다. 가능한 한 감동을 변형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세월이 가면서 탁해지고 굵어지긴 했지만 목소리가 워낙 맑고 악을 쓰는 창법이 아니기에 예전 목소리를 유지하고 있다. 조금 더 힘이 실린 것 같다. --이번 공연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좋은 극장에서 처음 이런 공연을 펼칠 수 있어서 좋다. 공연으로 보여드리겠다는 욕심밖에 없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피아노도 치고 안무도 보여줄 예정이다. 노래에 따라 쇼적인 무대로 만들기 위해 안무를 넣었다. 내가 춤을 춘다고 하면 다들 놀라는데 할아버지는 판소리를 하셨고 고모는 가야금 명인이시며 아버지는 민속학자이셨다. 가문에서만 모두 음반 150장을 내놓는 등 워낙 춤과 노래, 악기 등에 능통한 집안이다. 춤을 계속 발전시키고 싶은 욕심도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미자 선생님이나 나훈아 선생님 등 좋은 트로트가 너무 많다. 내년 5월에는 트로트만 모아서 앨범을 낼 계획이다. 12곡 중 6곡은 정통 트로트 곡으로, 6곡은 창작곡으로 넣을 생각이다. 미국 맨해튼에서 2년을 살았다. 젊었을 때 하고 싶었던 음악 공부를 했다. 그 2년이 20년을 보상하는 시간이었다. 미국에서 많은 에너지를 받아왔다. 이제 자유롭고 뒷받침도 되니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울 생각이다. 1년이나 1년 반에 앨범을 한 장씩 꾸준히 내고 싶다. 안인용 기자 djiz@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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