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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30 17:47 수정 : 2005.10.30 18:30

“아버지 육성 들으며 실컷 통곡하렵니다” 운정씨

“아버지 육성 들으며 실컷 통곡하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10년 세월이 흐를 동안 아직 마음껏 통곡도 못했습니다. 이번 음악회가 끝난 뒤엔 한국 남해의 작은 섬에라도 들어가 아버지가 남긴 육성 테이프를 들으며 실컷 통곡하렵니다.”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선생의 10주기 추모음악회 공연을 위해 베이징에 온 그의 딸 윤정(55)씨는 ‘아직도 아버지의 음악 듣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난해한 현대음악으로 꼽히는 그의 선율에는 늘 한맺힌 외침이나 ‘아시아의 아픔’ 같은 것이 배어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26~28일 평양공연을 마치고 베이징에 도착한 그를 공연을 하루 앞둔 29일 베이징 시내에서 만났다.

“아버지는 곧 음악이었고, 음악은 곧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의 음악을 진정으로 이해한 이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들을 땐 아버지가 거기 서 계시다는 전율에 사로잡혀 한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미국 뉴욕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한 윤씨는 귀금속을 주제로 한 금속공예 대신 이를 서민예술로 표현하는 길을 찾다가, 독일에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부름을 받았다. 서둘러 베를린의 집으로 날아갔을 때, 그는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가 통곡하는 걸 보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는 뉴욕의 작업실로 돌아가지 못했고, 결국 ‘아버지 사업’에 뛰어들어 10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는 일본, 미국, 독일 등지에서 ‘윤이상 추모 음악회’ 등 기념사업을 조직하고 후원하는 일에 몰두해 왔다.

루이제 린저와 대화테이프 20개
통영 외딴섬서 10년만에 들을 터
“아버지 음악은 내 운명”

북한의 ‘윤이상 음악연구소’ 후원회장을 맡아 지원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평양 시내 중심가에 자리잡은 15층 건물이 윤이상 음악연구소이다. 이 연구소에는 60명으로 구성된 윤이상 관현악단을 포함해 연구진 등 모두 120여명이 일하고 있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추구해 온 북쪽이 ‘윤이상의 현대음악’을 소화해내는 데 어려움이 없을 수 없었다. 또 홍수 등 자연재해와 경제난이 겹친 1990년대 북한에서 연구소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북쪽 사정에 밝은 남쪽 관계자에 따르면, 그러나 그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북쪽 연주자들은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윤이상 선생의 음악을 해석하는 데 있어 북쪽 연주자들의 자존심은 매우 높다고 윤씨는 말했다. 윤이상 음악연구소는 지금까지 24년 동안 매년 ‘윤이상 음악회’를 열어 왔다. 이 때문에 윤씨는 “윤이상 음악에 관한 한 북쪽의 청중은 귀가 깨어 있고 수준도 높은 편”이라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악기와 성악을 배워 온 윤씨가 음악을 포기한 건 ‘아버지의 그늘’이 너무 깊었기 때문이다. “‘윤이상의 딸이 그런 것도 모르나’라는 소리를 들을까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피해간 거죠.” 그러나 그는 결국 음악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의 말처럼 아버지의 음악은 곧 그의 운명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요즘 그는 윤이상 음악연구소에 현대식 녹음실을 마련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고 있다. 이 연구소 악단이 연주한 윤이상의 교향시 <나의 땅 나의 민족> 등을 재녹음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가 가슴에 품고 있는 숙제는 아버지가 남긴 육성 테이프를 듣는 일이다. <상처 받은 용>이란 제목의 윤이상 전기를 쓴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그와 대화한 20여개의 테이프가 그것이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이 테이프를 딸인 윤씨에게 건네줬다고 한다. 아버지의 육성을 듣는 두려움 때문에 지금까지 ‘10년 숙제’로 남겨 왔으나, 평양~베이징~서울~베를린을 잇는 이번 연주회 여정이 마무리되면 윤씨는 숙제를 마치기 위해 아버지의 고향인 통영 부근의 외딴 섬을 찾을 결심이다.


“아마 십년 묵은 통곡을 쏟아놓게 될 겁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스스로 남긴 귀중한 자료인 이 테이프를 들으면서 아버지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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