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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09 18:37 수정 : 2005.11.10 15:23

뒤통수 치는 기발함 이번에는 ‘슬픔의 정서’ “벗은 윗몸 보기 부끄럽다고? 엄마젖 안빨았나”


통조림같은 현대인들아 내 몸을 보고 깨라

‘빡빡 머리’, 강렬한 색채, 그리고 토플리스. 현대 무용가 안은미,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하나 더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상상력’, 뒤통수를 후려치는 기발함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이 ‘안은미’에 열광하는 까닭은 바로 이런 의외성 때문일 것이다.

지난 5일 찾아간 안은미의 신작 <렛 미 텔 유 썸씽>의 연습 현장.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지하 연습실에서 안씨를 포함해 11명의 무용수가 땀을 흘리고 있다. 무대가 아닌 연습실이라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할지 난감해 하는 사진기자에게, 안씨는 연습용 ‘바’에 거꾸로 매달려 ‘메롱’ 하는 표정을 짓거나, 피아노에 올라 타 요염한 포즈를 연출해 준다.

사진 촬영이 끝나고 연습 시작. 큰 보따리만한 빨간 풍선이 터지기도 하고, 사람이 사람에 매달려 켄타우로스(반인반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안은미는 항상 몸으로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하는 듯하다. 어기적거리며 걷기, 전력 질주, 바람 빠지는 풍선, 그리고 토플리스. 토플리스는 원시성을, 바람 빠지는 풍선은 생로병사를 뜻한다. 무용수들은 씩씩거리며 객석을 쏘아본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윗도리를 벗은 여성 무용수를 왜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지를. 교육을 잘못 받았기 때문이에요. 어릴 때는 쪽쪽 빨고 만지작거리며 놀던 엄마의 젖가슴이, 왜 어느 순간부터 포르노가 되는 거죠?” 그가 토플리스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현대인들의 이중적 성의식에 대한 도발적 문제제기를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옷을 입는 것만큼이나, 벗는 것도 자연스럽다. 껍데기를 벗어버리자는 의미일 수도 있다.

이번 작품은 ‘렛츠’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렛츠 고> <렛 미 체인지 유어 네임>에 이은 이번 작품은 “통조림처럼 판에 박힌 모습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전작들과 달리 ‘슬픔의 정서’가 담겨 있다. “바둑알을 어디에 놓느냐, 언제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죠. 수많은 군중들 가운데 누가 날 죽일지 알 수조차 없는….” 운명론을 역설하는 안씨의 몸짓은 “서늘한 청승”(무용평론가 김남수)일 수도 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안씨가 직접 고안하는 의상은 여전히 총천연색이다. 어어부밴드의 멤버였던 장영규씨의 흥겹고 실험적인 음악도 기대된다.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짓는 다른 현대무용과 달리, 안은미 작품에선 무용수들의 표정이 살아 있다. 화를 내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체력의 극한까지 소진하게 하는 안은미의 안무에, 무용수들은 혀를 내두르면서도 서로 참여하고 싶어 난리다. 그가 무용수들의 자발성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안씨는 “원 투 스리 포” 박자를 세며, “아~악”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박수를 치면서 격정적으로 춤을 지도한다. 도대체 저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길이 남는 작품을 해야죠. 정말 좋은 작품이요. 나는 작품 한 번 망해도 절대 실망 안 해요. 한 번 망가지면 다음에 꼭 잘하게 돼 있어요. 떨어지더라도 잘 떨어지면 괜찮아요.”

본인의 표현처럼 그에게 “신이 내렸는지도” 모르겠다. ‘애기 중’ ‘동자 귀신’ 등의 별명이 붙은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그는 너무나 단순하고, 유쾌하고, 힘이 넘친다.

18~19일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1544-5955.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한국 현대무용가로는 첫 유럽순회공연

안은미씨는 내년 4월 유럽 순회 공연을 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현대무용가가 유럽 극장들의 정식 초청을 받아 순회 공연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씨는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시절 자신이 안무한 <춘향>을 들고 이탈리아의 오페라 극장을 시작으로, 프랑스와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의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2007년에는 멕시코 등 남미 쪽에서의 순회 공연도 추진하고 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하고 주선한 것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월드뮤직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인 로버트 반덴부스다. 안씨의 공연을 보고 매료된 그는 자발적으로 이번 순회공연을 기획했다.

안씨의 이름은 독일에서부터 알려졌다. 지난해 세계적인 무용가 피나 바우쉬가 자신의 활동 본거지인 부퍼탈에 안은미를 초청한 이후 안씨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렛츠 시리즈 첫번째 작품인 <렛츠 고>와 지난 9월 독일에서 초연한 <렛 미 체인지 유어 네임>을 본 현지 언론은 “한국의 ‘꼬마 요정’”이 왔다고 흥분했다.

안씨의 작품이 동양적 세계를 대표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끊임없이 살려고 몸부림치는 ‘역동성’과 ‘신명’은 한국적 에너지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안은미는 이제 ‘아시아의 딸’(무용평론가 박용구)로서 세계를 향해 ‘전력질주’하고 있다.

이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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