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3.19 13:49
수정 : 2017.03.19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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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극장의 폐허에서 연주하는 광대극 <변두리극장> 배우들. 연희단거리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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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희단거리패 ‘변두리극장’
가발 뒤집어지고 가사 까먹고
스프링 단 지휘자는 퐁퐁 뛰고
박장대소·요절복통 뒤엔 ‘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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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극장의 폐허에서 연주하는 광대극 <변두리극장> 배우들. 연희단거리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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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이 무너졌다. 천장에서 검은 벽돌이 쏟아졌다. 트럼본, 트럼펫, 색소폰, 바이올린, 첼로가 쓰러지고, 광대들도 쓰러졌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서 다시 연주했다. 폐허 위의 연주, 그것은 2017년 3월 우리 모습 아닌가. 해방 이후 적폐가 한꺼번에 무너진 폐허 위에 새로 건설해야 할 일이 산적한 나라. 6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연희단거리패의 광대극 <변두리극장>의 마지막 장면이다. 6년 전이라면 느끼지 못했을 폐허 장면이 주는 ‘시의성’이다.
다시 연극의 처음으로 되돌아가자. 이 작품은 카를 발렌틴(1882~1948) 원작의 민중소극으로, 획일적 세상을 조롱하는 ‘깽판 연극’이다. ‘딴죽거는 광대’ 윤정섭이 신문을 읽으며 “이 기사 웃기죠?”라며 말을 건다. 관객한테 무슨 띠냐며 묻고는 “1988년생은 오전에 손재수가 있다네요”라고 운세를 읽어준다. 객석은 바로 긴장을 풀고 무장해제당한다. 이윽고 본색을 드러낸다. 윤정섭은 ‘피아노 치는 광대’ 김아라나와 함께 ‘변두리극장’을 구경가자고 한다. 자, 이제 극장 안의 또다른 극장으로 들어가볼까요?
‘지휘하는 광대’ 이승헌은 담배를 손가락에 끼웠다. 어, 담배가 없어졌다. 아, 이 베테랑 배우는 재주도 많구나! 일단 마술로 관객을 꾀었다. ‘노래하는 광대’ 신명은, ‘게으른 광대’ 박현승, ‘바이올린 광대’ 이승복, ‘드럼 광대’ 최동혁이 잇달아 등장한다. 이 광대극은 배우가 직접 연주하는 ‘액터 뮤지션’을 지향한다. 요컨대 <변두리극장>은 연희단거리패 배우들의 고부가 자산가치를 증시처럼 상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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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극 <변두리극장>에서 오페라가수로 분장한 김아라나와 지휘자 이승헌. 연희단거리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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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순 도르마’를 부르던 김아라나의 가발이 뒤집어지면 객석도 뒤집어지고, ‘하바네라’를 부르던 신명은이 가사를 까먹으면 객석도 머릿속이 하얘진다. 신발에 스프링을 단 지휘자 이승헌이 1m 높이 무대로 뛰어오르면 객석도 우와! 상체를 세웠다.
메시지는 간명하다. 제본공이 납품 회사에 전화를 걸면 회사에선 제본공을 관리과, 엔지니어 등 부서별로 전화 뺑뺑이를 돌린다. 지휘자는 단원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잘못된 악보를 밀어붙인다. 관료주의와 잘못된 정책 밀어붙이기를 비꼰다. 하지만 개별적인 메시지는 하나의 의미로 연결되지 않고 관객들의 박장대소와 요절복통 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진다. 한바탕 웃고 난 뒤의 허기. 그 ‘불타는 허무’를 향해 광대는 트럼펫을 불고 드럼을 두드리며, 지휘자는 허공을 휘젓는다. 이 풍진 세상의 ‘난리블루스’다. 26일까지 서울 혜화동 게릴라극장.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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