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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0 18:30 수정 : 2005.11.10 18:30

“아버지 음악이 한-중 노둣돌 됐으면” ‘정율성국제음악제’ 맞아 광주 방문한 딸 소제씨

“아버지 음악이 한-중 노둣돌 됐으면”

“정율성은 일제 침략에 맞서 한국의 독립과 중국의 해방을 이루려 했습니다. 이런 뜻을 이어받아 한-중이 정율성의 음악을 통해서 연대하고 교류하기를 바랍니다.”

중국의 혁명 음악가 정율성(1914~1976)의 딸 소제(63·중국 북경바로크실내합창단 단장)씨는 10일 정율성국제음악제를 마련한 광주를 찾아 남다른 감회를 표시했다.

“아버지는 격랑의 시대를 정면으로 돌파한 애국자였고 작곡가였죠. 중국에서는 위대한 음악적 재원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한국에서는 이념적인 문제로 가려졌다가 고향인 광주를 중심으로 점차 알려지고 있어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중국 ‘인민해방군가’ 만든 정율성
고향 광주시 지난해부터 기념행사
“중국 언론·관심 높다”

중국에서 아버지의 지명도가 높은 만큼 한국에서 기념사업을 펼치면 문화교류와 관광증진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난해는 학술대회, 올해는 국제음악제로 규모가 확대됐습니다. 내년에는 북한의 음악가들을 초청하는 학술제도 추진한다는 계획을 들었습니다. 중국의 언론기관과 관광업계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죠.”

30여년 동안 함께 생활했던 아버지에 대해 그는 “낚시를 좋아하고 산에도 자주 가는 등 생활을 소박하게 즐겼다”며 “외부에는 혁명가로 이름이 높았지만 할머니한테 효도하고 다른 가족에게 자상했던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작곡가인 아버지의 길을 따라 음악을 전공한 그는 중국 중앙음악학원 작곡가를 졸업하고 중국인민해방군 총정가무단 작곡가와 중국여유출판사 음악 편집인을 거쳤다.

“딸이 작곡을 전공하자 세심한 관심을 쏟았다. 이런 덕분에 창풍이나 경향이 자연스럽게 닮아갔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버지는 생전에 어머니(정설송·87·중국 전 네덜란드대사)와 함께 19살 때 떠난 고향을 찾아 산수도 즐기고 친구도 만나기를 바랐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대신 광주에 음악으로 돌아온 만큼 한국과 중국, 남한과 북한, 아시아 모든 나라가 평화와 연대를 다지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율성은 광주 숭일학교를 마친 뒤 33년 항일운동을 하러 중국으로 이주했다. 37년 연안 루쉰예술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한 뒤 공산당에 입당해 중국 인민해방군가인 〈팔로군 행진곡〉과 중국의 아리랑으로 불리는 〈옌안송〉 등 360여곡을 작곡했다.

광주시 남구청과 중국 문화부는 11~12일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한-중 정상급 음악단체와 음악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정율성국제음악제와 국제학술제를 펼친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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