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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4.18 15:59 수정 : 2017.04.18 19:10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해 <17, 그리고 꿈>을 연주하는 구자범 지휘자.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구자범, 구레츠키·랑고르 교향곡 묶어 6악장처럼 연주
김선정은 ‘어머니 슬픔’ 우리말로 살려내 직접 노래
27일 코리안심포니로 올리는 ‘17, 그리고 꿈’ 주목
“세월호를 넘어 100년 후에도 연주되는 곡 됐으면”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해 <17, 그리고 꿈>을 연주하는 구자범 지휘자.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참절한 슬픔, 그리고 어머니한테 대답하는 17살 아이. 놀라운 건 이런 주제를 연극같은 서사 장르가 아니라 교향곡으로 담아낸다는 점. 지휘자 구자범이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춰 올리는 <17, 그리고 꿈>이라는 공연이다.

이 무대는 눈여겨볼 특징이 두 가지 있다. 먼저, 교향곡 2개를 하나의 곡처럼 연주한다는 점. 구레츠키(1933~2010) 교향곡 3번 <슬픈 노래> 중 3악장에 연이어 5악장으로 구성된 랑고르(1893~1952) 교향곡 1번 <벼랑의 목가>를 중간휴식 없이 ‘6악장 교향곡’처럼 연주한다. 특히 <슬픈 노래> 3악장은 메조소프라노 김선정이 폴란드어 가사를 우리말로 옮겨 부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관객의 몰입도가 훨씬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두 곡을 이어 ‘6악장 교향곡’으로

“<슬픈 노래> 3악장이 <벼랑의 목가> 5악장 앞에 프롤로그로 붙어 6악장처럼 갑니다. 프롤로그에선 김선정 선생이 합창석 위에서 노래를 부를 겁니다. 엄마가 부르는 거예요. 아이가 죽었는데 왜, 어디서 죽었는지도 모르고…. 이어지는 <벼랑의 목가>는 랑고르가 17살에 만든 곡인데, 5악장 제목이 ‘삶의 용기’입니다. 마지막에 금관 밴드가 입장해 마치 아들이 부활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들이 엄마한테 대답하는 셈이죠.”

구자범이 두 곡을 이어 ‘6악장 교향곡’처럼 연주하는 이유다. <슬픈 노래>는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당한 영혼을 위로하는 곡. 이 중 3악장은 죽어가는 아들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슬픔을 담아, 앞선 2악장에서 17살 소녀가 죽음을 맞으며 부르는 한맺힌 탄식에 화답한다. 이어지는 <벼랑의 목가>는 아시아 초연으로, 17살 천재 작곡가가 세상을 향해 외치는 절절한 꿈이다. “노래가 끝나도 김 선생은 끝까지 앉아 있을 겁니다. 랑고르의 이야기를 계속 내려보는 거지요. 우리나라에서 3년 전 바다에서 죽어간 17살 아이들이나 17살 작곡가도 같은 꿈을 꿨을 겁니다. 그 17살 꿈을 환기하자는 겁니다. ‘17’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 2017년도 되지 않습니까?”

구레츠키 교향곡 <슬픈 노래> 3악장을 우리말로 옮겨 부르는 메조소프라노 김선정.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우리말로 재탄생한 ‘어머니의 슬픔’

“떠난 나의 아들/ 돌아오지 않네/ 돌아오지 않네// 따뜻한 네 침대도/ 혹시 모를 무덤조차/ 너를 위해 펴고/ 너를 위해 파도// 아무 소용 없네/ 아무도 모르네// 어둔 구렁텅에 버려져 있는지/ 차디찬 물속에 홀로 떠도는지.”

김선정이 우리말로 옮긴 <슬픈 노래> 3악장의 노랫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 정서와 10대 아이를 둔 제 마음을 표현하려 했어요. 단어 하나하나를 찾아서 시(詩)를 만들어 구 지휘자한테 보냈어요. 이 곡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침대와 무덤을 쓰고 싶은데, 발음과 음정이 맞지 않아 고심했어요. 구 지휘자가 가사를 추천해 도움을 받았습니다.”

폴란드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다 비교해 옮기되, 원래 노랫말의 (같은 계열의 모음과 운율을 반복하는) 라임까지 살리려 애썼다. 원래 폴란드어가 사투리로 돼 있어 우리말도 사투리로 할까도 생각했지만, 자칫 코믹 버전이 될까 봐 관뒀다. 구레츠키를 다룬 정찬의 소설도 읽었다. “소설 속 구레츠키의 말처럼 ‘예술가란 살아있는 자의 형벌을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자, 인간 사이의 슬픔의 강 너머에 있는 빛을 찾아내는 자, 나 자신이 슬픔의 강이 되어 철저한 비극으로 구원에 이르는 자’가 되어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구자범은 이 곡이 세월호에 국한되는 것을 경계했다. “반드시 세월호를 얘기하려는 게 아니니까, 100년 후에도 누가 불러도 아무 문제가 없게 만들었습니다.” 오는 27일 서울 에술의전당 콘서트홀. 1544-1555.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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