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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3 18:20 수정 : 2005.11.13 18:20

‘록’ 한우물 파기 잃은건 광고요 얻은건 독자라

“한 우물만 파는 게 저희 힘이죠.” 월간지 <핫뮤직>이 11월로 15주년을 맞았다. 현재 대중음악 잡지 가운데 최고령일 뿐만 아니라 두 달 뒤면 1970년 초에 나왔던 <월간 팝송>을 제치고 대중음악 잡지 역사상 최장수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 질긴 생명력을 조성진(40) 편집장은 ‘비타협’에서 찾는다.

편집장까지 다섯식구 ‘종횡무진’

연주법 등을 중심으로 다뤘던 유가지 <뮤직랜드>에서 1990년 가지쳐 나온 <핫뮤직>은 초기에 팝을 아울러 다루다 1996년께부터 록 전문 잡지로 자리를 굳혔다. “1990년대부터 그런지·얼터너티브 록이 폭발했어요. 그런데 주류 매체는 이런 기류들을 잘 다루지 않았죠.” 해외 헤비메탈·인디록 등 <핫뮤직>이 아니면 접하기 힘든 장르들을 팠다. 한국 인디 밴드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계산을 했으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큰 음반제작·기획사가 특정 가수를 표지로 해주면 좋은 대우를 해주겠다고 제안한 적도 있어요. 그때 몇 달 편하게 지내려고 수락했다면 평생 짐이 됐겠죠.”

고집 덕에 광고는 줄었으되 부수는 늘었다. 여기엔 발 빠른 기획도 한목 했다. 1993년께엔 조 편집장이 자비를 털어 미국을 횡단하며 최초의 록클럽 ‘위스키 어 고고’ 등 클럽 200군데를 취재해 실었다. 일본음악 시장이 개방되기 전인 1997년엔 ‘일본록 대해부’를 펴냈다. 록밴드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의 생가, 단골 술집 등을 일일이 찾아가 취재한 것도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1997년까지 <핫뮤직>은 잘 달렸다.

“아이엠에프 뒤 음반사들이 문을 닫으니 광고주가 더 줄었죠. 더 큰 문제는 인터넷 매체들이 늘었다는 거였어요.” 매달 200쪽을 내며 시디까지 붙여주던 ‘좋은 날들’은 인터넷 맹공에 저물었다.

사실 지금 인력을 보면 현재 매달 160~180쪽을 내는 것도 혀를 내두를 만한 일이다. 편집장을 빼면 송명하 수석기자, 권범준 기자, 전영애 사진기자, 이혜은 디자이너가 조촐한 식구의 전부다. 시디, 포스터가 가득한 마포구 서교동 명지빌딩 지하 30여 평 공간에서 이들은 고전 중이다. “1997년께는 기자만 5명이었죠. 인력과 자본이 보강되면 할 수 있는 기획 거리가 정말 많아요. 아쉽죠.”

2006년 웹잡지 내고 한국밴드 챙길 것

그래도 15년 동안 일궈낸 명성과 지지 세력이 이들 뒤에 버티고 있다. <핫뮤직>을 읽고 자란 독자 가운데는 자발적으로 취재해 글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외국에 살면서 국내에서 보기 힘든 공연이라며 취재해서 보내줘요. 정보도 주고요.” 또 웬만한 외국 뮤지션도 <핫뮤직>이라면 긴 말 안 붙이고 인터뷰에 응한다. 그래서 올해만도 록밴드 ‘푸파이터스’ ‘나인 인체 네일스’ 등이 표지를 장식했다.

가장 큰 힘은 무엇보다 편집진의 ‘열정’이다. 음악 마니아인 이들은 각자 한 달에 평균 앨범 100~200장을 듣는다. 좋아하다 보니 정보도 빨리 얻는다.

<핫뮤직>은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내년 초부터 웹잡지(hot-music.co.kr)를 내려고요. 팝, 가요를 모두 아우를 거예요.” 또 오는 15일 서울 홍대 앞 라이브클럽 ‘슬러거’에서 ‘핫 뮤직 화요 포럼’을 처음으로 열고 오프라인 커뮤니티를 실험한다. 조 편집장은 “지금까지는 외국 밴드 중심으로 다뤘지만 이젠 한국 록 밴드의 역량도 뒤지지 않기에 이에 걸맞게 조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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