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4.27 20:45
수정 : 2017.04.28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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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프로젝트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대형 영상설치작업 <출구>(Exit). 기후변화, 난민 이동, 테러 등 지난 10여년 사이 지구의 지정학적 환경이 변화해온 양상을 빅데이터와 다양한 그래픽 자료를 활용한 거대 영상으로 입체 브리핑하듯 보여주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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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예술의 미래상 탐구하는 ‘상하이프로젝트 2’ 개막
기후변화·수명연장·인구이동 등 지구적 화두에 대한 예술의 응답 모색
브리핑, 힐링, 총체적 관점…21세기 예술의 열쇳말들
빅데이터, 신체성, 인공지능 등 활용한 참신한 시각예술작업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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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프로젝트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대형 영상설치작업 <출구>(Exit). 기후변화, 난민 이동, 테러 등 지난 10여년 사이 지구의 지정학적 환경이 변화해온 양상을 빅데이터와 다양한 그래픽 자료를 활용한 거대 영상으로 입체 브리핑하듯 보여주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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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는 또렷하지 않다. 그러나 고민하며 이야기를 풀어내야 한다. 디지털 기기와 사물인터넷이 생산, 소비, 운송의 전 과정에 스며드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거론되는 지금, 예술가들에게 닥친 고민은 간단치 않다. 과연 예술은 미래에 어떤 화두를 던질 수 있을까. 22일 중국 글로벌 도시 상하이 푸둥의 히말라야 미술관에서 개막한 인문예술축제 ‘상하이프로젝트 2’ 전시는 이런 의문에 관한 예술가, 학자들의 응답을 보여주었다. 새롭고 기발한 틀거지의 34가지 작품을 통해서다.
가장 도드라진 열쇳말은 ‘브리핑’하는 예술. 미술관 3층의 전시장 들머리엔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비춰보라는 의미를 띤 ‘미러링’이란 대형 거울판이 붙어있었다. 그 아래 첫 문을 지나 바로 만나게 되는 <출구>(Exit)라는 대형 영상설치작품 공간은 지구촌 현안들을 스펙터클한 영상으로 눈에 쏙쏙 들어오게 펼쳐보이는 브리핑 룸 무대처럼 다가왔다. 최근 10여년간 전세계에서 벌어진 자연재해, 테러 등의 인재, 자본 흐름, 해수면 상승 같은 환경 변화와 이에 따른 인구 이동 양상의 통계수치들이 영상의 소재다. 계량화한 수치들을 반영해 다양한 색깔의 픽셀(점) 이미지들로 표현했다. 이 밝은 점 덩어리들이 용암처럼 분출해 지구촌 여기저기로 흘러가거나, 관련 수치들이 꿈틀거리며 명멸하는 형식으로 지구촌 인간들의 이주, 이동 상황 등을 생동감있게 보여준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도시연구자 폴 비릴리오의 아이디어에 착안한 이 작품은, 이제 지구상에 더는 고향도 없고 정주할 곳도 없다는 메시지를 내보이는 듯하다. 작품의 서문처럼, 비릴리오가 해변을 산책하며 질문하는 딸림 영상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카르티에 재단의 지원으로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 건축사무소가 계속 업데이트해온 이 영상물은 미래 시각예술이 빅데이터 정보를 시각적으로 축약해 대중에게 바로 전달하는 브리핑 매체가 될 것이라는 점도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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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미술관 3층에 차려진 상하이프로젝트 전시장 들머리의 모습. 현재 지구촌 사람들의 일상과 예술을 성찰한다는 의미를 담은 거대한 거울판(미러링) 작품을 전면에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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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화두는 힐링이었다. <출구>에 이어 미각, 후각의 색다른 경험을 통해 관객의 감성을 다독이는 공간이 다가왔다. 인공재료로 만든 꽃향기를 음미하고 알코올이 들어간 술 성분의 액체를 마시면서 미래의 미각 경험을 미리 음미하는 미리엄 시먼의 퍼포먼스 설치작업이다. 흰옷을 입은 퍼포먼스 배우들은 신비스런 향을 내뿜는 약재를 직접 제조하거나 안경 모양의 향 분사 장치를 관객에게 씌워주면서 감각을 새롭게 느껴보라고 권했다.
깊숙한 안쪽 방에는 중국 작가 아자오가 수천년 역사를 가진 중국 한의학의 침요법을 자기 몸에 실행하면서 찍은 설치영상이 등장했다. 전극을 이용한 한방 마사지 요법 체험 장치도 몸의 혈에 기운이 흐르는 영상과 함께 설치작품처럼 비치해 놓았다. 베트남전 참전기념비로 유명한 설치작가 마야 린은 멸종 위기에 놓인 동식물의 생동하는 모습을, 관객이 유리판을 들고 직접 투사해 들여다보는 몸쓰기 영상작업으로 체험해보게 했다. 생태활동가·작가로 활동하다 최근 타계한 구스타프 메츠거는 물을 내뿜는 플라스틱 튜브, 액체질소, 압축공기 장치 등의 기계 작업을 통해 자기파괴적인 문명의 속성을 풀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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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프로젝트 포스터. 대주제 문구 ‘시간의 씨앗’(Seeds of Time)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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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기술과 문화, 문명의 융복합 담론 마당을 표방하며 지난해 9~11월 전세계 인문학자와 생태활동가, 작가들이 진행한 1차 프로젝트에 이어 마련된 2차 행사다. 출품작들은 전지구적 과제를 두고 인문학자, 과학자, 작가들이 지난해와 이번에 연 세션 토론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대주제 ‘시간의 씨앗’(Seeds of Time)은 지구 위기 사태에 대비해 전세계의 식물 씨앗 모두를 노르웨이 스발바르섬에 보관하려는 생태학자, 운동가들의 노력을 담은, 같은 제목의 다큐 영화에서 따왔다. 한국 중견 기획자 이용우씨와 함께 전시를 공동기획한 스위스의 세계적인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이제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총체적 관점”이라며 “정치, 경제, 환경 등 지구적 현안에 대해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 전망을 공유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단언했다. 전시는 7월까지 계속된다. 5월엔 프랑스 인문학자 브뤼노 라투르가 찾아와 ‘새롭게 조율(리셋)하는 근대’를 놓고 작가들과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상하이/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히말라야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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