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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03 18:06 수정 : 2017.05.04 11:06

10여년 전 서울 인사동 한지가게와 주인을 찍은 구작 앞에 선 윤정미 작가. 이번 전시를 계기로 예전에 찍은 가게들을 다시 돌며 찍었다는 작가는 “별로 바뀌지 않은 가게의 얼개, 물건들과 달리 가게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이 변해 놀랐다”고 말했다.

을지로 상업화랑에서 펼쳐진 작가 윤정미의 20년 출사기
청계천, 을지로, 인사동 가게들의 20년전 과거와 지금을 담은 사진들
전시중 과거 찍은 가게와 사람들 다시 찍어 출품작 업데이트도

10여년 전 서울 인사동 한지가게와 주인을 찍은 구작 앞에 선 윤정미 작가. 이번 전시를 계기로 예전에 찍은 가게들을 다시 돌며 찍었다는 작가는 “별로 바뀌지 않은 가게의 얼개, 물건들과 달리 가게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이 변해 놀랐다”고 말했다.
이것이 인생인가? 가게 안 잡다한 풍경은 별반 바뀐 게 없는데, 지키는 사람들은 변했다.

서울 을지로 3가역 근처의 공구상가 건물 4층에 있는 전시공간 ‘상업화랑’에 가면 이 시대 한국인들의 인생무상을 보여주는 기묘한 ‘재탕’전을 만나게 된다. 10여년 전과 지금 시점으로 나눠 서울 을지로·청계천 공구상과 인사동 일대 문화용품 가게들을 찍어 함께 내놓은 윤정미(48) 작가의 ‘공간-사람-공간’전이다.

문 열고 들어가면 볼트, 너트 같은 금속부품, 문고리짝들이 들어찬 공구·인테리어 가게, 불상·불화들이 들어찬 불구점, 한지·붓들로 벽을 채운 필방들을 비추는 2000년대 초반의 대작 사진들이 엉성한 합판벽 곳곳에 나붙어 있다. 큰 사진 속 가게 안에 쌓인 산더미 같은 물품들을 뜯어보다가 그 사이로 가게 주인들이 다소곳이 ‘포즈’를 취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 속 과거의 그들과 최근 작가가 찍은 현재의 그들이 담긴 그 옆 작은 사진을 견줘가며 보는 것이 감상의 알짬이다. 물건들의 의구한 자태와 달리 가게 주인들은 세월의 파고 앞에 속절없이 흔들린 용모와 태도를 보여주는 까닭이다. 작가는 “인생의 비의를 읽어낸 기분”이라고 털어놓았다.

“1월 양찬제 화랑 대표의 전시 제의를 받고 2000년대 초 이곳 청계천·을지로 상인들을 찍은 작업이 기억나서 그걸 다시 해보자는 생각을 우연히 했어요. 3월10일부터 전시를 시작하고 나서도 틈틈이 옛적 사진을 찍은 을지로, 인사동 일대 가게들을 다시 가서 주인들 만나 촬영한 사진들을 전시장에 덧붙였지요. 막상 찍고 보니 가게는 거의 그대로인데, 사람들의 삶이 생각보다 많이 변해서 놀랐어요.”

문고리 파는 가게에서 검은 가죽재킷에 색안경을 쓰고 자리를 지켰던 20대 청년은 작업복을 입은 40대 맘씨 좋은 중년 아저씨가 되어 작가를 맞았다. 혈색 좋던 한 인사동 필방의 아저씨는 계속 졸면서 의욕을 잃은 할아버지가 되어 말 붙이기도 힘들었다. 팔팔하던 40대 화구상 사장님은 수년 전 세상을 떠나 가게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사동 사거리 붓가게 여주인은 팔순을 넘겼지만 지금도 딸과 함께 주문을 받느라 바빴다. 나이가 들어도 일감 넘치고 일에 대한 자신감을 잃지 않으면 용모가 크게 변하지 않고 건강도 유지한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2000년대 초반 이 연작을 시작할 당시엔 사라져가는 청계천·인사동·내곡동 가게 상인들의 삶을 증명사진 찍듯 담고 싶다는 바람이 컸다. 그룹전 출품 뒤 ‘핑크-블루’ 연작을 찍느라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때 작업들을 다시 꺼내고 근작들을 찍고 나니 아카이브 사진과는 또다른 우연성과 인간에 대한 애착이 솟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윤 작가는 어린 딸의 방을 관찰해 딸이 커가면서 좋아하는 물건들의 색이 바뀐다는 사실을 방의 풍경 사진으로 보여준 ‘핑크-블루’ 연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 나온 구작 신작들까지 합쳐 그의 작업은 20세기 초 독일 사진가 아우구스트 잔더가 창시한 유형학적 사진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특정 직업군, 계급군 인물들의 복장과 행동을 찍어 전형성을 보여주려 했던 잔더처럼 아카이브의 성격도 갖고 있지만, 아무 가게나 슬렁슬렁 들어가 주인들의 일상과 그들의 손때가 묻은 가게 물건들의 인간적 흔적까지 포착한다는 측면에서 인물초상과 풍경 다큐사진의 경계에 서 있기도 한 작업들이다. 미대에서 그림을 전공한 작가는 “다큐사진가냐 미술가냐 등의 정체성 구분에 묶이는 것은 싫다”고 했다. “그저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사는 공간을 캐는 사진이 좋아요. 이번 작업들을 좀더 모아 사진집을 내고 종합하는 전시도 해볼 참이에요.”

목~일요일만 열기 때문에 전시는 4일부터 7일까지 진행된다. 7일 저녁 6시엔 인문활동가 박사가 ‘사람과 물건’에 대한 글을 읽어주는 책 듣는 밤 행사가 옥상에서 열린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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