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5.11 14:27
수정 : 2017.05.11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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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노란봉투>. 연우무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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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노동자들 주인공 연극 <노란봉투>
2014년 11월 초연작, 2017년 광화문 고공농성 마무리에 담아
25일부터 노조파괴 과정 담은 후편격 <작전명: 시(C)가 왔다>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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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노란봉투>. 연우무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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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초겨울. 새벽. 급박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전화를 받자 수화기에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선생님, 회사에서 용역깡패를 투입했어요. 사람들에게 빨리 좀 알려주세요.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제발 빨리 좀, 빨리 좀….’ 공장 밖으로 쫓겨난 사람들이 길바닥에 서 있다가 나를 맞았다. 내 카메라는 이미 사건이 휩쓸고 지나간 현장만을 담아야 했다. 그들은 그 추운 겨울 공장 밖에서 60일을 싸웠다. 봄이 되었고… 나는 다시 안산으로 찾아와야 했다.”
기자의 내레이션으로 연극 <노란봉투>는 시작한다. 때는 2014년 4월16일. 파업을 막 끝낸 경기 안산의 한 자동차부품 제조회사 노조 사무실로 조합원들이 들어선다. 봄볕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잠시. 동료 노동자 강호의 등장에 분위기는 일순 냉랭해진다. 강호가 파업에 동참하지 않으면서부터 묵었던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실랑이를 끝내는 건 세월호 속보다.
<노란봉투>는 2014년 11월 초연된 연극으로 제목인 ‘노란봉투’는 가수 이효리가 참여해 확산되었던 ‘노란봉투 프로젝트’에서 가져왔다. 2013년 11월 법원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회사에 47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한 시민이 “10만명이 4만7000원씩 걷어 갚자” 제안했고, 여기서 촉발된 시민 모금운동이 노란봉투 프로젝트다.
이렇듯 작품은 쌍용자동차 파업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러나 모델이 된 실제 기업은 따로 있다. 작가 이양구는 “작품을 준비하면서 벨로우즈(자동차, 카메라, 진공청소기 등 여러 기기에 쓰이는 주름관) 전문 제작업체 에스제이엠(SJM)을 알게 됐어요. 거기서 파업 노동자들을 인터뷰했고, 그 인터뷰의 상당 부분을 대사에 녹여냈어요”라고 말한다. 현실적인 인물과 실감나는 상황은 이러한 취재의 결과다. 작가는 해고 노동자와 잔류 노동자, 파업 참여 노동자와 불참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고루 애정을 주며 그들 사이의 골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 때문에 이 연극에는 따로 주인공이 없다. 혹, 한 사람을 지목해야 한다면 그는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노동자 민성이 될 것이다.
그는 이 연극의 부재하는 주인공이다. 민성은 파업에 불참하며 기업노조에 가입하라 권유한 이유로 동료 노동자들의 지탄을 받아왔다. 그리고 터진 세월호 참사. 자식 키우는 꿈으로 살았던 민성이 자살하자 그와 반목했던 동료 노동자가 목숨을 걸고 고공농성을 하러 전광판 위에 오른다. 이어지는 영상에서는 실제 고공농성을 벌인 재능교육 오수영?여민희, 한진중공업 김진숙, 현대자동차 최병승과,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진중공업 최강서,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모습들이 투사된다.
그리고 2017년 5월. 광화문 세광빌딩 옥외 광고판에서 6명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정리해고·노동악법 철폐”를 외치며 고공농성 중이다. 이양구는 말한다. “2014년 <노란봉투> 대본을 작성하려고 취재를 하던 중 광화문에서 노숙농성 중이던 씨앤엠(CNM) 노동자 강성덕씨를 만났다. 그가 고공농성을 하러 올라가는 걸 보면서, <노란봉투>의 마지막 장면을 고공농성 장면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금 광화문과 울산에서 고공농성이 시작되는 것을 보며, 아직도 극중 현실이 실제 현실에서 계속된다는 게 안타깝다.” 연출가 전인철은 “공연 중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자본을 가진 분들은 돈으로 뭉치는데, 우리는 무엇으로 뭉칠 수 있을까요’. 고민해보니 자본가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투표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을 받는다.
파업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한 연극 <노란봉투>는 14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공연된다. 25일부터 6월11일까지는 <노란봉투>의 후편 격인, 노조파괴전문 노무법인으로 알려진 창조컨설팅의 노조파괴 과정을 담은 연극 <작전명: 시(C)가 왔다>가 공연된다.
김일송/공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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