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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19 19:54 수정 : 2017.06.19 21:29

【짬】 ‘춤의 학교’ 운영하는 최보결 대표

최보결 ‘최보결의 춤의 학교’ 대표.

‘도시의 노마드’란 이름의 시민무용단이 있다. 참여연대 부설 아카데미 수강생들로 꾸렸다. 지난해 서울 선유도에서 열린 춤 축제에 참여한 이들의 공연 영상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움직임에서 자신의 세계를 꿈꾸는 당당한 의지가 느껴진다. 이런 ‘생의 의지’는 무대 공연과는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과 감동으로 이어진다. 이 시민무용단의 전담 예술가인 최보결(51) ‘최보결의 춤의 학교’ 대표를 지난 16일 서울 자하문로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그의 춤터는 무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5년 전 자신의 무대 공연에 처음으로 일반인을 참여시켰다. 3년 전부터 참여연대 부설 아카데미에서 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2년 전엔 서울 성동구치소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춤 교육 재능기부를 시작했다. 이 재능봉사는 한 달에 4차례 한다. “재소자들이 따로 편지를 보내와요. ‘자존감 회복의 춤’이라고요. 저는 그들에게 ‘여러분은 잠재적 댄서’라고 말하죠.” 참여연대나 민주노총 간부들이 회합하는 곳에도 간다. 그리고 함께 춤을 추자고 한다. 최근엔 기업 사장님이나 공무원들 모임에도 초청을 받는다.

어릴적 혼자 춤추고 다녀 “미친 아이”
제도권 무용교육 한계…박사학위 도전
커뮤니티댄스로 “춤의 관계망 형성”

일반인 대상 참여연대 아카데미 강의
수강생들 ‘도시의 노마드’ 시민무용단
거리공연·춤축제·촛불집회 등 활약중

“춤 한번 못추고 죽으며 안된다고 이야기해요. 지구 생명체 중에 인간이 자연을 가장 못 누립니다. 자유롭게 창공을 나는 새의 몸짓을 보세요.” 2013년과 2014년엔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와 제주 4·3의 상처가 깃든 현장에서 학살 피해자의 넋을 달래는 춤을 췄다. 현재 ‘최보결의 춤의 학교’엔 11명의 연구원이 있다. 평생을 군인으로 살았던 ‘아저씨’를 포함해 10명이 비전공 일반인이다.

현대무용 전공 무용수가 어떻게 공동체 안으로 뛰어들었을까? 그는 1985년 경희대 무용과에 입학했다. “대학에 들어갈 때 예술은 자유로운 표현이란 환상이 있었어요. 지성과 예술의 만남을 기대했는데 생각과 달라 고통스러웠어요. 무용교육이 억압적이었기 때문이죠. 다리를 일자로 찢어야 하는데, 아파서 안하겠다고 했어요. 유화 캔버스를 들고 학교 숲속에 숨기도 했어요.” 이런 말도 했다. “다리를 벌리는 게 표현과 뭔 상관인지 그런 고민을 했어요. 어떤 움직임이 표현이고, 어떤 움직임에 사람들이 감동하는지 많은 생각을 했죠.”

그는 초등학교 때 학교 복도에서 춤을 추고 다녔다. 이런 그를 보고 친구들은 미쳤다고 했다. 대학을 나온 뒤 서울의 한 여중서 무용교사를 했다. “학교쪽과 많이 싸웠어요. 강당에서 춤 문화제를 열어 교육청 표창도 받았지만 학교는 좋아하지 않더군요. 통제 중심의 학교에서 무용 교육의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재직 10년 만에 사표를 쓰고 공부를 시작했다. “변화를 시키려면 제가 똑똑한 리더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2007년 동덕여대에서 무용학 박사를 받았다. 논문 제목은 ‘춤 표현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이다. 박사 공부를 하면서 독일 철학자 니체를 만났다. “니체는 삶을 긍정하는 건강한 춤을 추라고 했어요. 너의 춤을 추고, 삶의 주인이 되라고 했어요. 인간의 본성, 생명성을 회복하라는 얘기죠.”

그는 논문 마지막에 ‘세상에 춤의 관계망을 형성해야 한다’고 썼다. “논문을 쓰면서 춤이 삶과 연결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춤이 세상 병폐에 대한 처방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요.” 2013년 미국으로 건너가 ‘치유의 무용가’ 안나 핼프린(97)이 지도하는 표현예술 통합치료과정을 수료한 것도 이런 생각에서다. 그는 지금 자신이 10년 전 논문에 쓴 것을 현실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라, ‘나는 위대해’라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간부모임에선 “춤을 출 수 없다면 혁명도 할 수 없다”고 외쳤다. “춤꾼은 발바닥에 귀를 달고 다닌다고 니체가 말했죠. 내 몸에 귀를 기울이라는 얘기입니다. 감각이 깨어나면 의식이 깨어납니다. 춤을 추면 (권력자들의) 말을 잘 안들어요. 로마 이래 권력자들이 사람들에게 즐거운 춤을 못추게 한 이유죠. 황제만 췄고 지금은 예술가만 춥니다.”

왜 사람들은 이 좋은 춤을 누리지 못하는 걸까? “근거없는 불안과 두려움에 차 있어요. 제주 4·3이나 5·18, 세월호처럼 해결되지 못한 시대의 상흔들이 사람들 마음 속에 있어요. 제가 하는 일은 이 불안과 두려움의 몸을 정화시키는 것이죠. 몸의 성찰을 통해 자신과 만난 뒤에야 창조로 넘어갑니다.” 두려워하던 이들이 한번 움직임을 시작하면 그 뒤론 못할 게 없단다. “‘수줍어서 못한다’고 하는 수강생에게 ‘그것도 춤’이라고 말해줍니다. 어떤 것도 춤이 될 수 있어요. 성경이 있기 전에 ‘내 안의 감정을 드러내거나 표현하지 못하면 그게 너를 죽일 것이다’라는 말이 있었어요.”

‘따듯하게 손을 잡아주는 이가 있고 내 멋대로 춤을 출 수 있어 좋다.’ 그의 수강생 중 한 명이 한 말이다. “춤을 추면 신체 접촉을 하게 되는데 정분이라도 나면 어떡하나, 미리 걱정을 하기도 해요. 막상 춤을 추면 서로 존중합니다. 자신을 대하듯, 다른 사람도 똑같이 대하죠.”

꿈을 물었다. “위대한 춤을 추는 것이죠. 톨스토이 문학처럼요. 제가 ‘커뮤니티(공동체) 댄스’에 노력을 기울이자 무용수로서 저의 전문성에 회의를 보이는 이들이 있는 것 같아요.” 말을 이었다. “커뮤니티 댄스는 저의 예술적 실험입니다. 춤은 춤에서 찾을 수 없어요. 삶에서 얻은 것을 춤으로 찾아야 합니다.”

그의 춤 사위는 순하다. 자연을 많이 닮았다. 그 부드러움에 강함이 깃든다.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춤의 언어로 되살리느냐가 저의 최대 관심사입니다. 이 시대에 절대 필요한 것은 생명의 에너지니까요.”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도시의 노마드 공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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