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06.22 20:10 수정 : 2017.06.22 21:22

식케이. 하이어뮤직 제공

강일권의 프로악담러

식케이. 하이어뮤직 제공
근 몇 년 사이 힙합이 대세로 떠올랐지만, 그 이면에 도사린 부정적인 측면도 만만치 않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이 과도한 레퍼런스다. 음악계에서 레퍼런스란 특정 스타일이나 분위기를 참고하는 걸 일컫는다. 최근 힙합 팬들 사이에선 한국의 몇몇 래퍼들이 특정 미국 래퍼들의 스타일, 혹은 곡을 따라했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하이어뮤직의 식케이와 미국 래퍼 트래비스 스콧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평소 너무나도 좋아하고 영향받은 이의 음악을 직접 구현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자기화’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드러나다 보니 좋지 않게 귀결된 예였다.

사실 이 같은 레퍼런스 논란은 비단 힙합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 대중음악계의 고질적인 병폐였다. 물론, 레퍼런스 행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순 없다. 그러나 그저 참고하는 수준이 아니라 베낀 수준으로 나아가면 얘긴 달라진다. 무엇보다 이는 표절의 영역과도 맞닿아 있으며, 실제 국내에서 매년 불거지는 표절 논란 대부분은 과도한 레퍼런스가 원인이다. 당장 포털 사이트에 표절을 검색했을 때 크게 논란이 된 것으로 거론되는 곡들과 음악저작권협회에 어느 순간 저작권자가 외국 음악인으로 바뀌어 있는 곡들이 그런 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결정적인 이유는 가요계에 만연한 잘못된 레퍼런스 관행 탓이다. 일례로 1990년대 초·중반의 가요계에서는 일본 음악인들이 미국 팝 음악을 스펀지처럼 흡수하여 체화한 제이팝의 영향이 상당했다. 당시 표절 시비가 일어난 가요 대부분이 일본 뮤지션들의 곡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인터넷이 발전하고 전세계 대중음악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면서 한국 대중음악계는 제이팝의 영향력에서 벗어났다. 세계 대중음악의 흐름을 주도하는 미국의 최신 음악들을 직접 흡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부터 국내의 작곡 환경은 미국 팝 음악계의 흐름과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특히 메이저에서 활동하는 많은 작곡가들은 누구보다 팝계의 유행에 민감했다. 반면 2000년대 들어 새롭게 등장한 젊은 작곡가들 중에는 이미 자라면서 해당 장르의 감성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영향, 혹은 참고란 것이 특정 곡이나 스타일을 교묘하게 베끼는 방식으로 표출되니 문제다. 본인이 즐겨 듣고 영향받은 장르와 뮤지션의 음악 스타일을 구현해보고 싶어서 그 분위기는 참고하되 세부적인 부분을 독자적으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것과, 표절 논란의 근원이 되는 특정 곡을 놓고, 악기 소스나 멜로디만 살짝 바꾸는 짓은 천지 차이다. 둘 다 레퍼런스에 근거한 작업 방식이지만 후자는 사기나 다름없다. 당연히 근절시켜야 할 방식이다. 무엇보다 세계 음악계의 관심이 높아 ‘케이팝의 위상’을 논하는 현실에서 이는 정말 창피한 일이다.

결국 레퍼런스 논란을 불식하기 위해선 잘못된 레퍼런스의 종착점인 표절 문제를 제대로 다루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본질적으론 음악인의 양심이 가장 중요하겠으나 미국과 유럽처럼 강력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필요하다. 한국에선 예나 지금이나 표절에 대한 판결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데다가, 설사 표절 판정이 난다 해도 그것이 언론을 통해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으며, 손해배상액도 터무니없이 적다. 우린 종종 다른 나라의 가수들이 가요를 무단으로 번안, 혹은 카피한 곡들을 보며 비판하곤 한다. 하지만 가요 역사 속에 존재하나 드러나지 않았던, 그리고 오늘날에도 매년 논란이 되는 카피곡들을 그들이 듣는다면, 우리도 언제든지 조롱과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음악인, 관계자, 전문가, 음악팬들은 지금보다 더욱 치열하게 이 논란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강일권 <리드머> 편집장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