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06.25 17:19 수정 : 2017.06.26 20:40

15일 저녁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현대무용 강습이 진행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현대무용은 난해하고 지루’ 편견 옛말
“알고 싶어서” “수동적 삶 버리게 돼”
직장인·학생·주부 등 몸으로 표현

국립현대무용단 일반인 대상 ‘무용학교’
지원자 몰려들어 정원 늘리기도
안무가들 “춤 열정에 자극받는다”

15일 저녁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현대무용 강습이 진행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00년대 이후 한국 현대무용은 <댄싱9>(2013년 엠넷에서 방영한 현대무용 서바이벌 프로그램)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저히 대중의 시각으로 말하면 그렇다. 방송의 인기에 힘입어, 한 번도 현대무용 공연을 본 적 없는 관객들이 스타 무용수를 보려고 극장에 발을 들여놨다. ‘현대무용은 난해하고 지루하다’는 오래된 편견이 조금씩 허물어진 것도 그때부터다.

프로그램이 방영된 지 4년여가 흘렀지만, 대중매체와 극장에서 현대무용을 바라보는 온도 차는 여전히 크다. 전문가들은 <댄싱9>이 현대무용 대중화의 물꼬를 텄다면, 그 관심을 지속시키는 것은 현대무용계 스스로의 노력에 달렸다고 강조해왔다. 이에 예술가와 유관단체들은 대중이 직접 현대무용을 경험할 수 있는 워크숍이나 ‘커뮤니티댄스’(일반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춤으로 창작하는 것)를 한 대안으로 보고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그 현장에 가봤다.

일상이 춤이 되는 경험 “자~ 앞에서 바람이 불어온다고 상상해보세요.” 키와 체구가 제각각인 스무명 남짓의 무리가 꼿꼿이 섰다가 일제히 한 방향으로 몸을 기울인다. 바닥과 몸이 이루는 각이 65도쯤 됐을까. 머리를 바닥에 찧을세라 기운 방향으로 발걸음을 빠르게 옮긴다. 이런 식으로 동서남북 몇 번 더 반복하는가 싶더니 더는 방향을 정하지 않는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서로 말하거나 쳐다보지 않고도 동시에 한 방향으로 수렴해야 하는 상황. 온몸의 세포가 바짝 긴장하고, 옆 사람의 미세한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음정의 변화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몽환적인 전자음이 옅게 깔린다. 중국의 4대 고대 악기로 꼽히는 후루쓰(葫蘆絲) 즉흥 연주만이 정적을 가만가만 깬다. 피리와 리코더 중간쯤 되는 청아한 음색이 바람 소리를 닮았다. 화려한 테크닉은 없지만 바람을 소재로 한 짧은 소품공연을 본 느낌이다.

지난 1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내 국립현대무용단 연습실에서 열린 무용학교 프로그램 ‘동기에 춤을 부여하다’ 6주차 수업의 한 장면이다. 무용학교는 국립현대무용단이 2013년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매년 두 학기 개설하는 교육 사업. 10주 교육에 공연의상 대여비까지 포함해 20만원이다. 올 상반기에는 현대무용단 콜렉티브에이의 차진엽 예술감독과, 고블린파티 지경민 안무가가 강사로 나서 큰 호응을 얻었다. 접수 당시 지원자가 몰리면서 정원을 각각 스무명에서 서른명으로 늘렸을 정도다.

15일 저녁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현대무용 강습이 진행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경민 안무가의 지도로 열린 이날 수업에서는 바람을 맞는 상황 설정 말고도, 추억의 놀이인 ‘아이엠그라운드’가 활용됐다. 수강생들은 큰 원을 그리며 빙 둘러앉아 해당 놀이를 살짝 변형한 미션을 해내며 박자감을 익혔다. 김양희 무용학교 담당자는 “일상적인 움직임이 춤으로 승화하는 것을 직접 체험하면서 ‘현대무용은 추상적’이라는 편견을 자연스레 깰 수 있는 수업”이라며 “수강생의 이해도와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윈윈 무용학교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20~40대의 폭넓은 연령대에 학생과 직장인, 주부, 다른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고루 분포돼 있다. 무용에 대한 이해도 천차만별이다. 이번 무용학교 참가자 5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무용 전공생과 함께 현대무용 공연을 한 번도 관람하지 않은 참가자도 63%에 이르렀다.

이렇게 다른 이들이 현대무용을 배우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무용 경험 및 체험’(40%) 목적이 가장 컸고, ‘자신감 및 삶의 질 증진’(20%), ‘근력운동과 유연성 향상’(18%), ‘진로·직업교육 일환’(10%)이 차례로 그 뒤를 이었다. 대학생 강연주(22)씨는 “<댄싱9>을 보면서 현대무용에 관심이 생겼는데, 무용이 자세 교정에도 좋다고 해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혜진(27)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몸이 아파 작년부터 다니고 있다. 매번 다른 동작을 배우고 다른 부위에 통증을 느끼면서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낀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씨는 또 “지금까지 공부며 취업이며 해야 하는 이유를 묻지 않고 따르는 수동적인 삶을 살았는데, 춤이 아주 조금씩 느는 것을 경험하면서 난생처음 무언가를 더 잘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됐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이러한 워크숍이 수강생에게만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한 달까지, 일반인 대상 워크숍을 매년 세 건 이상 연다는 정영두(43) 안무가는 “계속 춤을 추다 보면 기계적으로 움직이거나 사고하는, 매너리즘에 빠지는 순간이 온다. 일반인에게는 당연한 것도 상세하게 나눠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관성적인 행동을 반성하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무용수와 다른 조건을 가진 몸의 움직임을 보고 새로운 발상을 할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경민 안무가도 “전공생은 춤을 의무감에 출 때도 있는 반면, 일반인에게서는 항상 춤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느껴진다. 선생인 내가 오히려 좋은 에너지를 받아 가는 이유”라며 웃었다.

관객개발 효과 있지만 프로그램 다양성 확보해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현대무용 교육이 확대할 조짐을 보이는 것은 예술가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현대무용의 저변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현대무용이야말로 워크숍을 통해 관객이 유입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장르라고 강조한다. 장인주 무용평론가는 “테크닉 지도가 주가 되는 발레나 한국무용과는 달리, 현대무용은 자신을 표현하는 측면이 강하다”며 “몸을 쓸 일이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직접 움직이며 몸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면 어렵게만 느껴지던 현대무용에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21일 오후 경기 안산의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무료로 진행하는 현대무용 강습 프로그램 ‘굿모닝 굿바디: 에어발레’에서 수강생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김혜경 제공
실제로 경기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상주단체인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관객 개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역주민에게 무료 진행하는 ‘굿모닝 굿바디: 에어발레’의 수강생 최수안(50·주부)씨는 “현대무용 공연을 본 적은 없지만 막상 해보니 너무 재미있어 2기도 진행해달라고 조르고 있다. 이 단체의 공연도 꼭 보러 갈 생각”이라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방과후교사 한지원(42)씨도 “일반 스포츠센터에서 진행하는 줌바, 에어로빅과 같은 수업과는 전문성의 측면에서 차원이 다르다”며 “신체와 정신의 균형을 강조하는 창의수업에 관심이 많은데 현대무용을 배우며 큰 도움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은 멀다. 수요와 공급이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이 부재한 점은 다급하고도 현실적인 문제다. 이를테면 기획과 홍보 인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개인 안무가들의 워크숍은 그 수가 많은데도 정보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반인 워크숍 대부분이 몸을 움직이고 일부 테크닉을 배우는 기초수업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정영두 안무가는 “양적 팽창이 어느 정도 이뤄진 현 상황에서는 철학, 인류학, 사회학 등과 결합해 춤을 더욱 깊이 탐구해볼 수 있는 워크숍도 필요하다”며 “이제는 질적 도약과 함께 프로그램의 다양성까지 확보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지난 21일 오후 경기 안산의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무료로 진행하는 현대무용 강습 프로그램 ‘굿모닝 굿바디: 에어발레’에서 수강생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김혜경 제공
춤을 전혀 모르는 지역 청소년 46명과 ‘콘탁트호프’라는 공연을 만든 현대무용의 혁명가 피나 바우슈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춤은 테크닉 그 이상이다. 우리는 곧잘 잊지만 움직임은 삶에서 비롯한다. 새로운 작품은 존재하는 춤의 형식이 아니라 동시대의 삶에서 출발한다.”

김혜경 프리랜서 기자 salutkyeong@gmail.com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